[오늘과 내일/이진녕]안철수, 민주당 식 경선에 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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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일 03시 00분


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투표할 때 내가 찍으려는 후보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번호를 누를 수도 있고, 모든 후보의 이름을 다 들은 뒤 번호를 누를 수도 있다.

599표 오류가 수만 표 될 뻔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후자(後者)의 방식만 유효표로 간주하는 모바일 투표를 설계했다. 전자(前者)처럼 투표하고 전화를 끊으면 기권표가 되게 했다. 투표 방식을 먼저 결정하고 후보 4명의 번호는 나중에 정했으니 마지막 4번 후보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음모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제주와 울산 다음의 강원 경선 때부터 전자의 방식으로 금방 바꾼 걸 보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치밀하게 모든 오류 가능성을 살피지 않은 신중함의 결여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기권 처리된 추정 표가 제주에서 599표였다. 그러나 민주당 선관위는 “통계적 오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과연 그런가. 599표는 제주 모바일 투표 전체 유효 투표수의 약 3%에 이른다. 1, 2, 3번 후보들의 항의로 방식이 바뀌었으니 망정이지 13개 순회지역 모두에서 기존 방식대로 투표가 이뤄졌다면 수만 표가 될 수도 있었다. 또 경선 초가 아니라 끝날 무렵에 문제가 제기됐다면 경선 전체가 구렁텅이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것이 작은 문제인가.

현장 연설 하루 전에 모바일 투표를 마치도록 한 방식은 더 우습다. 모바일 투표와 현장 투표 신청자는 대략 95 대 5의 비율이다. 그런데도 절대 다수의 모바일 선거인단은 후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투표를 해야 한다. 후보의 정견 발표가 그렇게 하찮은 것이라면 차라리 여론조사를 하지 무엇 때문에 지역마다 돌며 복잡하게 투표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극소수의 현장 투표자들 앞에서 구태여 연설을 하게 하는 것은 그저 모양새나 갖추자는 것 아닌가.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그렇게는 안 한다.

모바일 투표 자체의 위험성도 치명적이다. 모바일 투표의 속성상 아무래도 장·노년층보다는 젊은층, 정보기술(IT)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익숙한 사람이 참여하기가 용이해 투표의 편향성이 발생할 수 있다. 일반 선거에서 누구에게는 투표권을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산 학력 신분 연령 성별 등 어떤 요소에도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정직하게 투표가 이뤄지는지도 의문이다. 나중에라도 실제 모바일 투표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바일 투표가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야권의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는 큰 손은 정봉주 전 의원의 팬클럽인 미권스, 문성근 민주당 전 대표가 제안해 만든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그리고 노사모다. 1월과 6월 민주당 전당대회 때 미권스와 ‘국민의 명령’이 상당한 위력을 떨쳤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 이번 경선에는 과연 이들이 팔짱만 끼고 있을까. 손을 뻗쳤다면 그 손이 어느 후보에게로 향했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5% 선거인단에만 유효한 정견발표


공정성은 선거에서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민주당은 흥행과 완전국민경선이라는 명분에 더 집착했다. 그 결과 공정성도 타격을 받고 흥행에도 차질이 생겼다. 모든 후보가 피해자다.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당내 선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궁금한 게 있다. 상식과 공정한 기회를 중시하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라면 이런 경선에 참여할까. 행여 나중에 민주당 후보와 자신이 단일화를 겨룰 때 이런 방식이라면 과연 응할까.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오늘과 내일#이진녕#경선#민주당#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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