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은 줄곧 달 위에 인류의 첫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은 특히 이번 선거와 겹치면서 큰 여운을 남겼다. 암스트롱을 달에 보낸 당시의 미국은 위대하고 감동적인 여정을 시작한 국가였다. 과학 컴퓨터공학 물리학의 돌파구를 마련해 미국을, 나아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어떤 여정에 있나. 예산 균형을 맞추는 일? 건강보험을 확대하는 길? 이들도 필수적인 도구이지만 어디로 가기 위한 건강이고 무엇을 위한 균형이라는 것인가.
공화당의 답을 듣기 위해 공화당 전당대회를 찾았다. 무엇보다 밋 롬니 대선후보의 새로운 구상을 기대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허름한 티셔츠 한 장이 전부였다. 롬니 후보와 공화당의 정치적 기반에는 별다른 유기적 연관성이 없다. 롬니 후보는 당의 힘을 빌려 대통령 당선의 꿈을 이루려 하고, 당은 롬니 후보를 활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의 부인 앤은 남편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연설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실수가 아니었다.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거짓말이라도 할 사람이다. 라이언은 오바마 대통령이 고용과 적자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런 큰 구멍을 만든 부시 행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혹평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외교정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연설자 대부분은 이민자라는 가족 배경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하지만 공화당이야말로 이민법 개혁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정당이다. 부끄러움 없는 위선의 경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거짓을 바탕으로 연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진실도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새로운 여정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이번 선거는 두 후보 모두 “나는 그저 밋 롬니가 아닐 뿐이에요”라는 구호로 경쟁하는 선거인 셈이다.
기업 철학자 겸 LRN의 최고경영자인 도브 사이드먼은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달 탐사 구상을 발표할 때 10년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 강력하고 거대한 비전은 대통령이 죽은 뒤에도 계속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로 자신의 임기 이후를 내다보는 감동적인 비전을 내놓은 정치인은 없었다. 사이드먼은 이번 선거를 두고 “경합주 유권자를 빼내려는 데 열성적이지만 그 누구도 우리 모두를 하나의 국민으로 고취해 도전적인 여정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 여정은 단순한 연설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모을 전략을 세우고 이를 수행할 법규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목표가 그런 여정에 부합할까. 달에는 이미 인간을 보냈다. 10년 안에 모든 미국인이 고등교육, 즉 직업학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 등의 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또는 세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발사대’로 미국을 바꾸면 어떨까. 10년 안에 미국에서 창업하는 기업을 현재의 50만 개에서 100만 개로 늘리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이를 위해 이민법을 개정하고 과학연구에 새로 투자하고 인프라를 다시 구축해보면 어떨까.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예외론’을 내세우지 않았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위대한 국가를 보통 수준의 국가로 만들 뿐이다. 위대한 여정은 포기하고 예외론만 제창하는 꼴이다. 만약 이번 선거가 두 정당이나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닌, 예외적인 비전의 여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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