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를 천사로 보는 사람도 있고, 금화는커녕 거짓으로 코팅된 엽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박정희를 오직 독재자로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국민을 헐벗음에서 해방시킨 경제구국의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다. 김대중에 대한 평가도 민주화의 기수, 권력욕의 화신 등으로 갈린다.
민주화 공로-산업화 수혜 세대
전두환에 대해 역사의 죄 말고 경제 업적을 말하면 돌팔매가 날아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시대의 인재 김재익(1938∼1983)을 발탁하고 정치적 역풍을 막아내 한국 경제의 고질이던 두 자릿수 인플레와 국제수지 적자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대전환은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국가를 가능케 한 기반이 됐다.
그러나 1980년 전두환 신군부 등장 과정의 광주 비극과 5·17 쿠데타는 반정부의 정당성을 키웠다. 그때 대학생들은 ‘타도 전두환’의 집단 에너지를 뿜어냈고, 사회에 나와서는 국가 중심세력으로 진입하는 에너지로 바꿔냈다. 이들 청년은 1990년대 30대 때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의 전면에 등장해 ‘386’이라는 이례적인 세대 칭호를 거머쥐었다. 그 대부분이 오늘의 40대다.
올해 4·11총선 유권자 연령 분포를 보면 40대는 882만 명으로 전체의 22%를 차지한다. 그 선배 세대인 50대 이상은 39.2%, 후배 세대인 30대 이하는 38.8%로 엇비슷하다.
정치권이 40대의 풍향에 예민한 까닭은 단지 22%의 결정력뿐 아니라 후배 세대에 대한 영향력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50대 초반의 한 논설위원은 “아직도 40대 기분”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음미해 볼 만하다.
지금의 40대 가운데는 대학 시절 전두환 독재와 맞짱 떠 1987년 6·29민주화 선언을 이끌어낸 그룹도 있고, 화염병을 피해 도서관에서 영달의 길을 닦았던 그룹도 있다. 후자는 나중에 사회에서 성공하자 운동권에 대한 부채(負債)의식을 드러냈다. 이제 50세로, 386세대의 맏형 격인 80학번 안철수도 그런 고백을 했다.
386은 민주화 훈장 말고 현실의 삶에서도 상대적으로 성공한 세대다. 이들은 한국 정치의 중심에 뿌리를 깊이 내렸고, 자신들의 ‘도구로서의’ 대통령을 만들 정도였다. 경제 쪽에서는 IT 붐의 수혜자이자 선도자로, 기성 재벌 뺨치는 ‘IT 문어발’도 나왔다. 영화계를 비롯한 연성(軟性) 문화권력이 40대 손 안에 들어간 지도 오래다. 적지 않은 40대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던 1986∼88년의 3저(저금리 저달러 저유가) 호황기에 대학에 다니거나 사회에 진출해 ‘윤택한 학창시절, 골라잡는 일자리’의 수혜자가 됐다.
자식세대 국가 장래도 내다볼 때
40대의 대선배인 70대 이상은 물론이고 5060세대도 개발과 건설에 허리가 휘고, 월남전에서 피 흘리며 경제를 일궈냈다. 일부 40대는 선배 세대를 “쓸어버려야 할 꼴통들”이라며 째려보지만 40대가 음으로 양으로 선배들의 덕을 보지 않았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
물론 한국의 40대 882만 명이 다 행운의 주인공은 아니다. 일자리 불안, 교육비 부담, 자산가치 하락, 턱없이 모자라는 노후 준비 등으로 지친 40대가 많다. 한 40대 초반 논설위원은 “선배 세대가 40대에 이룬 성취에 비해 나는 너무 초라한 것 같고, 앞으로 10년 안에 무엇을 이룰지 회의도 든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2030은 더 막막하고 더 불안하다. 한때 축복받은 X세대로 불렸던 30대는 386 선배들이 깔아놓은 정치사회이념 프레임 안에서 386 문화의 충실한 소비자 노릇을 했지만 386의 벽에 가로막힌 형국이다. 20대는 정규직의 꿈마저 못 꿀 지경이다. 그 사회경제적 책임의 상당 부분이 김대중 노무현 두 좌파 정권에 있음에도 386은 좌파 코드를 고수하며 2030세대를 대신 희생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0대는 두 정권을 탄생시킨 주력이었다.
40대 대박 영화감독들은 500만, 1000만 관객을 끌어모으는 한국 영화 성공의 엔진이다. 동시에 투자자본과 스크린을 독과점(獨寡占)해 후배 세대의 설 자리를 좁힌다. 30대 논객 변희재는 “386들이 인맥 패거리를 통해 정치력 약한 30대 이하 전문가들을 탄압하고 있는 것이 현재 세대갈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40대는 선배 세대에게 거칠게 덤벼 얻어낸 것도 많다. 자신들에 앞서 국가 발전을 감당한 선배 세대의 공(功)도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후배, 그리고 후배 세대에게는 기회의 창을 더 넓게 열어주는 넉넉한 선배가 돼줄 수 없을까.
지금은 전두환 시대도 아니다. 40대가 10년 뒤, 20년 뒤 5060이 됐을 때를 넘겨다보며 국가사회의 안정적 운영에 열정을 더 보태기를 나는 바란다. 자신들의 아들딸이 스물, 서른이 됐을 때 오늘의 2030보다는 더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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