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를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임원 공모 제도라는 정책 실험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공모제 도입 이후에도 낙하산 인사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공공기관 임원 인사에 대한 정치적 수요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명권자가 마음을 비우고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 한 공모제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임명권자 ‘낙하산 인사’시비 계속
사전 내정이 의심되는 여러 경험적 사례를 보면 제도에 대한 신뢰성이 약화된 것도 공모제의 효과를 잠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모제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절차적·도덕적 정당성을 빌리기 위한 상징적 제도로 활용되고, 임명권자의 정치적 책임을 모호하게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적극적 모집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자발적 응모자들만으로 구성된 인력 풀(pool)에서 후보자를 뽑고 있어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울러 임추위의 후보자 추천 규모가 3∼5배수까지로 정해져 있어 낙하산 인사 시비 대상이 될 수 있는 지원자가 거의 자동으로 진입하게 됨으로써 후보자 검증 및 추천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실패한 공모제의 타당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모제는 종전 임명제에 비해 결코 나은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공모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로 전환하는 것이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임명권자의 책임성 확보와 인사관리의 효율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모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발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한 후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공모제 적용 대상 범위를 축소하거나 선택적 공모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미 2009년에 모든 임원 공모제 의무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기관장과 상임감사로 축소하는 개선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현재 준정부기관의 경우 임추위 구성 시 주무 부처 공무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임원 선임 과정에서 사실상 주무 부처의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 굳이 이런 형태를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공모제를 존속시킬 경우에는 공모제 적용 대상을 공기업으로 한정하고, 준정부기관에 대해서는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이 필요하거나 특수한 전문 분야 경력이 필요한 경우 등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만 공모제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공기업에 적용되는 공모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임원 공모를 할 때 기관별 특성을 고려하여 자격 조건을 사전에 설정하여 적극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격 조건과 능력, 전문성과 개방성에 기초한 임원 선임 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후보자 추천 규모도 2배수 이내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후보자 추천 주체도 해당 기관의 비상임 이사들로만 구성하여 임원 선임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원칙과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선임된 공공기관의 임원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도 아울러 필요하다.
대상 줄이고 자격조건 공개해야
공공기관 임원 선임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공공기관 경영의 정치화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 또한 낙하산 인사 여부에 대한 객관적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아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공공기관 경영의 탈정치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고, 정치적 임용을 정당하게 인정할 수 있는 공공기관의 범위를 사회적 합의에 따라 형성하는 것이 공공기관 임원 선임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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