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칸, 베를린을 포함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최고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은 “한국 영화 100년사에 최대 쾌거”라고 평가했다. 1996년 ‘악어’로 데뷔한 김 감독이 국내 영화계에서 ‘비주류’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이뤄 낸 성과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고 15세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스스로를 평할 만큼 그의 삶은 시련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시류와 대세를 추종하기보다 예술영화의 외길을 고집했다.
사회의 밑바닥 인물이 등장하고 음울한 정서가 결합된 그의 작품은 독특한 형식미와 연출력으로 유럽 영화계에서 일찌감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손대는 영화마다 흥행에서 참패를 거듭했고 혹평을 받기 일쑤였다. 공들여 만든 영화들이 상영관을 잡지 못해 개봉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는 환멸을 느끼고 칩거한다. 하지만 3년간의 은둔생활 끝에 영화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아리랑’으로 2011년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아 재기했고 마침내 ‘피에타’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김 감독의 수상은 한국 영화의 실력과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기초과학이 중요한 것처럼 예술영화는 흥행영화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기업 중심의 제작 배급 체제 속에서 저예산 예술영화는 연명조차 힘든 상황이다. 문화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예술영화를 추구하는 감독들이 영화계에 뿌리를 내리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현승 감독이 트위터에 올린 글은 새겨 볼 만하다.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럽다. 한국 영화계가 그에게 해 준 것이 없다. 제작비의 대부분은 자신의 돈과 해외 판매수익으로 충당된 것이다. 한국 밖의 관객과 영화인이 키운 감독이다.” 척박한 풍토에서 치열하게 영화를 제작했고 그 길에서 숱한 상처를 받은 김 감독의 영예로운 수상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