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어느 새벽 처음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어느 새벽 처음으로

―조은 (1960∼)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불안하게 눈을 뜨던

여느 때와 달랐다

내 마음이 어둠 속에

죽순처럼 솟아 있었다
머리맡엔 종이와 펜

지난밤 먹으려다 잊은 맑은 미역국

어둠을 더듬느라

지문 남긴 안경과

다시는 안 입을 것처럼

개켜 놓은 옷

방전된 전화기
내 방으로

밀려온 그림자

창 밖 그림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밤새 눌려 있던

머리카락이 부풀고

까슬까슬하던 혀가 촉촉했다
흰 종이에다

떨며 썼다

어느 새벽 처음으로……
이렇게 깨끗한 첫새벽!

화자는 많은 청춘이 그렇듯 현재가 평안치 않고 따라서 미래는 불안하기만 했던 듯하다. 그 어지러웠던 마음이 어둠 속에 죽순처럼 솟았다.

우리는 지금 정갈한 탄생의 순간을 보고 있다. 그 순간의 맑은 전율을 잊지 않는 한, 죽순의 그 마음 곧게 자라나 청청한 대숲 이루리라.

초심의 아름다움, 초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다. 하는 일이 지지부진하고 기쁨이 없다면, 그 일을 시작할 때의 처음 마음, 처음 자세를 되새겨보자. 어린 아기로 돌아가, 서툴더라도 즐겁게 한 걸음 한 걸음, 새로 디뎌보자.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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