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덩치는 크지만 존경받는 선진국은 아니다. 경제도 그렇고 정치 수준도 선진국에 못 미친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는 일본보다 훨씬 앞선 나라다. 러시아는 제국주의와 냉전시대의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강제이주 반성한 러시아를 보라
러시아는 1991년 ‘탄압 당한 민족들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1937년 스탈린이 연해주에 살던 한인 17만여 명을 중앙아시아로 쫓아낸 잘못을 인정하고, 생존자와 후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토대를 만든 것이다. 이 법은 ‘(1937년의 조치는) 고려인에게 간첩죄를 씌워 강제이주를 수반하고 특별 유형지에서 폭력과 강제적 제재를 가한 집단학살이었다’고 규정했다.
러시아 의회는 ‘한인 명예회복에 관한 결정’을 채택해 과거의 잘못을 조목조목 반성하고 구체적인 보상대책을 마련했다. 의회는 ‘1937년 재러시아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채택한, 정치적 탄압의 근거가 된 법규들을 불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며 ‘재러시아 고려인의 정치적 명예를 회복시키며 러시아 영토 내 과거 영주지에 자유로운 개인의 의사에 따라 귀환하기 위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러시아의 반성 이후 현재까지 약 3만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귀환했다. 최근 우수리스크 시에서 만난 김 발레리아 고려신문 편집국장은 “고려인들은 러시아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용서했다”고 말했다. 조상들이 겪은 고통과 스탈린에 대한 원망은 지울 수 없지만 러시아에 대한 분노는 없다는 것이다. 귀환 고려인의 절반인 1만5000명이 우수리스크에 살고 있다. 김 국장의 가족도 중앙아시아에서 귀환한 강제 이주 피해자다.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철저하다.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배상에도 성의를 다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저지른 전쟁 범죄를 놓고 독일을 비난하는 국가와 국민이 없어도 독일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잘못을 반성한다. 독일을 일류 국가라고 한다면 러시아는 이류 국가는 될 것이다.
인권에 대한 개인의 의식과 국가의 처신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현대는 인권에 관한 한 과거 어느 시대보다 발전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위안부 책임을 인정했던 19년 전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며 시대를 역행하려 한다. 러시아만도 못하니 일본은 삼류 국가 수준이다.
일본은 과거사와 영토 망발에 대해 극우 핑계를 댄다. 극우세력이 일본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군색한 변명이다. 요즘 일본은 극우를 따라가고 있다. 극우를 앞장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는 전국 정당으로 출범하면서 로고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했다. 하시모토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 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는 망언을 한 인물이다. 일본유신회는 머지않아 실시될 총선에서 상당한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과 연합해 정권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극우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1억2000만 日 국민이 중심 잡아야
설사 민주당이 재집권한다 해도 여태까지 벌여 놓은 망발을 기정사실화하고 거기서 더 나가면 나가지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도 극우의 작품이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매입 방침을 밝히자 일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20억5000만 엔(약 300억 원)을 주고 섬을 국유화했다. 국가와 극우 정치인이 한통속이 된 것이다.
1억2000만 일본 국민에게 묻는다. 일본이 극우를 앞세워 삼류국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래서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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