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정말 더웠다. 폭염이 밤낮으로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다. 열대야는 13일간 이어져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길었다.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거나 잠을 청하려고 에어컨을 튼 것까지는 좋았다. 8월분 전기료 고지서가 나오자 많은 가정에서 요금폭탄을 맞았다고 아우성이다. 전기료가 지난달의 3∼4배 나왔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한국전력에 항의전화가 쏟아지고 전기요금을 조회할 수 있는 한전 홈페이지는 접속 폭주로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무더위로 기업체나 업소도 평소보다 냉방용 전기를 더 썼는데 왜 가정만 난리를 치는 걸까.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면 요금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전기요금 누진제는 가정용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 파동(오일쇼크)을 계기로 산업체의 생산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가정의 전기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행 누진제는 월 100kWh 단위로 요금을 6단계로 나누고 있다. 1단계 요금은 kWh당 57.9원이고 6단계는 677.3원으로 요금 차가 11.7배나 된다. 월 400kWh를 쓰던 가정이 2kW 용량의 에어컨을 한 달간 100시간 써 600kWh가 됐다면 전기료는 6만6000원에서 18만 원으로 오른다. 사용량은 50% 늘었는데 요금은 2.7배로 급증하는 것이다. 외국은 대부분 누진제 없이 단일요금을 적용한다. 일부 누진제를 시행하는 나라도 낮은 누진율을 적용한다. 미국은 1.1배, 일본은 1.4배, 대만은 1.9배(여름철 2.4배)다. 우리의 요금 차 11.7배는 지나치게 큰 것을 알 수 있다.
누진제는 7단계 18.5배이던 기준을 2004년 조정한 뒤 8년 넘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1998년 163kWh이던 가구당 월평균 전기 사용량은 지난해 240kWh로 늘었다. 누진율이 크게 높아지는 월 300kWh 이상 쓰는 가정은 1000만 가구를 넘는다. 에어컨을 하루에 몇 시간만 틀어도 전체 가정의 70∼80%가 요금폭탄을 맞는 구조인 것이다. 가전제품이 대형화됐고 보급이 늘어난 영향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전기소비량은 9510kWh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272kWh보다 15% 많다. 그런데 주거부문 1인당 전기소비량은 1183kWh로 OECD 평균의 절반이 채 안 된다. 한국 가정이 100을 쓴다면 미국은 374, 프랑스는 223, 일본은 190, 영국은 168, 독일은 144를 쓴다. 한국 가정이 전기를 많이 쓰는 게 아니라 선진국보다 적게 쓰고 있다. 전기를 낭비하는 주범이 따로 있는데도 그동안 가정에 덤터기를 씌워 온 것이다.
가정이 쓰는 전기는 전체의 15%밖에 안 된다. 55%는 산업체가, 25%는 업소나 사무실에서 쓴다. 전기의 대부분을 쓰는 기업과 업소는 누진제 없이 단일요금을 낸다. 일부를 쓰는 가정에만 징벌제 성격의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가정이 찜통더위에 시달릴 때 일부 업소가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문을 열어놓은 채 영업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월 550kWh를 쓰면 룸살롱은 8만9170원을, 가정은 16만8960원을 낸다. 누진제 탓에 가정 전기요금이 룸살롱보다 89.5% 비싼 것이다.
누진제가 에너지 절약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측면이 있지만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서둘러 바꿔야 한다. 폭염에도 요금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을 장식품처럼 모셔두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습과 노동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가정도 더울 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수 있도록 하는 역발상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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