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선을 놓고 충돌하면서 헌재 재판관 5명의 공석(空席)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이 추천한 안창호 후보자에 대해 “장남의 군복무 때 특혜 의혹 등이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다”며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에 반대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이 안창호 후보자 임명을 반대할 경우 민주당 몫인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이 때문에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려던 일정은 무산됐다. 헌법 해석의 최종 보루인 헌재가 여야 기싸움의 제물로 전락한 셈이다.
헌재는 재판관 9명으로 구성되지만 지난해 7월 국회 선출 3인 중 민주당 몫인 조용환 후보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8명으로 운영돼 왔다. 임기가 끝난 재판관 4명은 14일 퇴임해 현재 4명만 남은 상태다. 헌재 재판관 회의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결국 15일부터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5명이 빠져버린 ‘식물 헌재’가 돼 버렸다. 헌재는 통상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을 선고일로 잡는다. 이번 주 중반까지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달 재판이 모두 미뤄질 수도 있다. 1988년 헌재가 문을 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는 헌재 재판관 후보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열어 검증하고, 국회 몫의 경우 직접 선출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헌재 재판관 선출과 검증을 권한으로만 생각하고 의무이자 책임인 것은 망각하고 있다. 국회가 식물 헌재를 만든 것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처사이자 할 일을 제때 안 해도 괜찮다는 오만한 태도다.
국민은 연일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성범죄 사건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흉포한 성범죄 전과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는 문제가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상당수 법원은 헌재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 2년 이상 전자발찌 결정을 미뤄온 헌재의 책임도 무겁지만 국회가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재판을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
향후 5년간 국정 주도세력을 선택할 18대 대통령선거가 90일 정도 남았다. 대선 정국에서 헌재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 헌재의 공백 상태는 하루빨리 해소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