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영호]정치권과 너무 가까워진 검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대선후보들의 레이스로 정치권이 점점 더 뜨거워져 간다. 정책이슈의 선점 못지않게 인재영입 경쟁도 치열하다. 주변에 어떤 인물이 포진하느냐에 따라 후보의 신뢰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 새로운 인재 영입을 공개하는 쪽에서는 효과의 극대화를 노리지 않을 수 없다. 때로 깜짝쇼 방식이 동원된다. 몇 년 전 대선자금을 파헤치며 자신들에게 칼을 겨누던 검사들에게 정치 쇄신을 해보라고 칼을 쥐여주겠다는 새누리당의 발표는 깜짝쇼의 압권이다.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을 사람을 뜻밖의 자리로 끌어들였으니까.

깜짝쇼가 절묘하다 보니 예상한 대로 충격이 컸다. 퇴임 후 48일밖에 되지 않은 검사 출신 대법관이 주연으로 등장한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대선자금 수사 당시 열렬한 성원을 보냈던 사람일수록 충격이 더할지도 모른다. 법조계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한 언론이나 야권에서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대법관을 지낸 사람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이렇게 팽개쳐도 되느냐고 포화를 쏘아댔다. 당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사자들의 부인은 묻혀 버렸다.

퇴임 48일 대법관의 ‘깜짝쇼’


대법관 자리의 무게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사법부의 최고 어른이기도 하지만 법조계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성도 있다. 명예와 권위가 주어지는 만큼 처신에 제약이 없을 수 없다. 고도의 청렴성을 갖춰야 하고, 정치적 중립도 지켜야 한다. 재임 중은 물론이고 퇴임 후에도 일정기간 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그 자리가 주는 인격의 무게를 퇴임 이후까지 향유하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깜짝쇼의 여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의 변신으로 검찰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대선자금수사팀 핵심 멤버들의 갑작스러운 변신은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사건을 다루면서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인식이 무뎌진 걸까. 최근 검사들의 국회 진출이 많다 보니, 언제부턴가 검사 경력을 발판으로 삼아도 되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법치를 확산시키자면 유능한 법률가가 국회로 많이 진출해야 된다는 명분론에 밀리고 있다. 검찰의 우군을 국회에 박아두는 실리에 눈이 어두워 입을 다문 사람도 있다.

검사들의 정치권행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장애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정치권의 주문사항이 다양한 경로로 수사 검사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중립이 의심받는다. 사건을 처리하면서 정치권을 기웃거렸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중립에 대한 불신은 깊어진다.

중립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으로 가는 검사가 왜 늘어날까. 무엇보다 참신한 인재 수혈을 바라는 쪽의 러브콜에 응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차출돼 가는 경우도 있다. 수사를 통해 얻게 되는 검사 개개인의 인지도가 정치권에서는 큰 자산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많은 관심이 쏠린 대형 사건을 맡았던 검사일수록 주가가 높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살려 부패척결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병풍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때로는 전공이 그렇다 보니 정치판의 이전투구(泥田鬪狗)에 저격수로 동원되기도 한다.

검사로서의 인지도가 정치권 진출에 결정적인 발판이 된다는 공식이 굳어지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매명(賣名)에 집착하는 검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매명에 집착하거나 공명심(功名心)에 들뜨게 되면 균형감각을 잃고 수사의 정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거악의 척결에 나서는 소위 특수통 검사들이 그런 유혹에 더 취약하다. 무리하게 사건을 키우거나 증거가 약한데도 거물을 잡겠다고 억지로 공범으로 기소할 수도 있다.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 큰 사건일수록 더 위험하다. 한편으로 박수 소리에 도취된 나머지 칼끝의 방향에 따라 정치구도까지 이리저리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정치적 중립 문제는 검찰의 해묵은 숙제다. 그동안에는 정치권의 비위를 맞추거나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주눅 들지 말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제를 하나 더 떠안게 됐다. 모처럼 기개 있는 검사가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나설 때도 의심의 눈길을 잠재워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각을 세워 달려드는 것이 결코 정치권 진출의 발판 만들기가 아니라고 설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거물’ ‘대형사건’ 수사해야 뜬다?

법률가의 영역에서 벗어나 정치판에 나가 나라 사랑을 실천해 보이며 능력을 발휘하는 검사들도 있지만 현실의 벽 때문인지 그 밥에 그 나물이 된 사람도 많다. 내로라하던 검찰 엘리트들의 변신을 보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던 지난날의 고단함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중립 시비에 더욱 시달릴지도 모를 험난한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검찰이 정치권과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 부채를 어떻게 갚을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대선후보#정치권#깜짝쇼#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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