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자연인 박근혜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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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박근혜 씨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불리한 문제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면서 아버지의 업적과 시대적 요청 등만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 명백하게 잘못된 것으로 평가가 내려진 유신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등 솔직하지 못한 태도가 거슬렸다.’

1989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 보도다. 박근혜 후보는 전날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출연했다. 박 후보가 직접 박정희 시대를 평가한다니 국민은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박 후보는 이 자리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5·16혁명은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4·19혁명의)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고 했다. 유신을 두고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결정을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안보를 이용했다’는 말을 갖다 붙여서 자라나는 세대도 전부 그렇게 알도록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왜곡이냐”고 반문했다.

박 후보의 이런 발언을 놓고 당시에도 논쟁이 뜨거웠다. 23년이 지난 지금, 같은 논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쯤 되면 박 후보의 생각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그의 측근들이 아무리 조언하고, 박 후보의 발언을 포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거나 박 후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100% 대한민국이니, 국민통합이니 하는 그럴듯한 포장 속에 어설픈 반성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것은 ‘신뢰와 원칙’이란 박 후보의 브랜드 가치만 떨어뜨릴 수 있다.

만약 박 후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20대에 부모를 잃고 절망과 좌절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40대가 돼서야 삶의 깊이를 깨친 한 수필가의 일기 모음이다.

그는 말한다. ‘이 세상의 많은 문제는 내가 남을 못 다스려서라기보다 자기가 자신을 못 다스려서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박 후보의 문제도 박 후보 자신에게서 비롯됐다. 다시 수필가는 말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시대와 시간, 상황에 따라 가치기준, 판단이 달라진다.’ 박 후보가 유독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평가만은 양보하지 않는 게 문제의 출발이다. ‘세상만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박 후보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게 전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이 범하는 모든 악, 그릇된 언행은 애착심과 오만에서 비롯된다’ ‘극심한 분노도 어느 의미에선 오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수많은 배신자들을 보며 ‘아버지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빛 뒤에는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수필가의 말이다.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제국을 과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쟁터에 몰아넣었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을 울리고 고통스럽게 하였는가.’ 박정희의 경제성장 뒤에는 수많은 피와 눈물이 어리어 있다.

‘인간의 위대함이란 얼마나 자신을 바르게 할 수 있는가, 또 얼마나 남을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며 편안히 해줄 수 있는가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여기서 인용한 글들은 모두 1993년 발간된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 담겨 있다. 저자는 다름 아닌 박근혜다. 당시 그의 나이 41세였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박정희#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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