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기성용 선수가 속한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 축구경기에선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상대팀 ‘애스턴 빌라’의 연고지 버밍엄에서 열렸는데, 전반 19분 경기 도중에 모든 관중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골이나 멋진 패스도 없었는데 홈팀 원정팀 상관없이 있는 힘껏 손바닥을 부딪쳤다.
이유는 전광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애스턴 빌라에서 주장으로 뛰던 스틸리안 페트로프의 사진이 내걸렸다. 그는 올해 초 급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갑작스레 팀을 떠났다. 기립박수는 등번호 19번 페트로프의 쾌유를 빌며 관중들이 마련한 1분의 이벤트였다. 경기는 계속됐지만 시간이 멈춘 듯 모두의 마음이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영국의 한 축구장이 감동으로 물결치던 지난 주말, 바깥세상도 엄청난 파도가 휘몰아쳤다. 이슬람권에선 종교적 분노가 불을 뿜은 반미(反美)시위가, 중국 대륙에선 영토분쟁이 촉발시킨 반일시위가 잇따랐다. 서구도 잠잠하지 않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부실한 경제정책을 탓하며,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독선을 비난하며 군중이 모여들었다. 미국은 반(反)월가 시위 1주년을 맞은 뉴욕과 교원노조가 파업을 일으킨 시카고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수긍이 간다. 세상 누구도 타인의 믿음을 비하할 자격은 없다. 가뜩이나 열악한 처지인 이슬람 시민들로선 종교를 건드리는 건 울라고 뺨 때려준 격이다.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에 당한 게 많은 중국인의 분노도 뿌리가 깊다. 경제적 고충, 정부의 구태의연함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어지간했으면 거리로 나섰을까 싶다.
하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를 비롯해 수단과 레바논 등에서 애꿎은 목숨들이 희생됐고 수백 명이 다쳤다. 중국에선 일본인이란 이유로 린치를 당했고, 재산 피해는 수백억 원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도 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엄청났다. 아랍의 봄부터 반 월가 시위까지 한해 내내 끊이질 않았다. 오죽하면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1년 올해의 인물이 ‘protester(시위자)’였을까. 성난 민심은 멈출 줄 몰랐고 여러 독재자들이 물러나거나 세상을 떠났다.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져 시리아는 내전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와 최근 시위는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표현을 빌리자면 “엉뚱하게 남의 집 앞에서 성내는 느낌”이다. 일개 종교인의 편협무지한 촌극을 왜 타국 외교공관에 화풀이하나. 일본 브랜드 가게를 부수면 손해 보는 건 중국 직원들 아닌가. 군중심리가 비이성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란 게 있다.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 싸웠던 지난해 시위는 ‘사람(protester)’이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모양새는 그저 ‘시위’만 가득하다. 고개가 끄덕여지던 공감대는 갈수록 옅어지고 눈살만 찌푸려진다.
버밍엄 관중이 기립박수를 칠 때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었다. 선수들은 경기를 멈추진 않았지만, 1분 동안 거친 공격이나 태클은 자제했다. 도를 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따른 셈이다. 흔히 스포츠를 인생의 축소판이라 한다. 식상한 소리지만, 뒤집어보면 세상사는 스포츠의 확대판이 될 터. 이번 시위가 축구보다 못하단 소린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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