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동영]서진환의 성폭행이 무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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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1일 03시 00분


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끔찍하고 화날 일이다. 천진난만하게 “엄마, 안녕∼” 하고 인사하는 두 아이를 배웅하고 돌아온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무참히 살해한 서진환. 그가 이런 잔혹극을 벌이기 13일 전인 지난달 7일 똑같은 수법으로 다른 주부를 성폭행했다.

공포와 수치에 떨던 피해 여성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겠지만 성폭행당한 사실을 가족이 알게 되는 게 더 두려운 현실 때문에 멈칫한 듯하다. 다행히 범죄라는 걸 확인한 의사의 신고로 서진환의 추가 성폭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 대목에서 서진환의 1차 성폭행이 무죄로 결론 나는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피해 여성의 집에 몰래 침입해 성폭행했다. 주거침입 상황이기 때문에 형법상 강간이 아니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3조(특수강간 등)를 적용받게 됐다. 형법상 강간은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재판에 넘길 수 있는 친고죄다. 성폭력 특례법은 3조를 비롯해 13세 미만의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는 친고죄가 아니라고 규정한다.

만일 그가 집에 침입하지 않고 성폭행했다고 가정하면, 형법상 강간죄가 적용돼 피해 여성이 직접 고소하지 않는 한 수사 대상이 아니다. 기소가 되지 않으니 사법적 판단을 받지 않는다. 보통 사람 생각처럼 ‘처벌받지 않는 것은 무죄’라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현재진행형인 친고죄 폐지 논란의 한 단면이다. 친고죄를 유지하자는 측은 그래야 가해자가 피해자 배상에 적극 나선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남성우월적 사고방식의 발로일 뿐이다. 남성의 성폭력에 짓밟힌 여성의 상처를 돈으로 때울 수 있다는 말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사람을 때리고 상처 입히는 범죄는 고소가 없어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런데 유독 여성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강간 등의 성범죄에 대해선 돈으로 해결할 길을 열어 놓은 까닭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래된 삼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간하고도 당당하게 수표 몇 장 툭 던져 놓고 “옷이나 사 입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악질 성폭행범이 과연 괜찮다는 말인가.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주먹으로 맞는 것보다 더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임에도 가족을 포함해 주변에는 오히려 피해자를 ‘이상한 여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성차별적 관념이 피해자를 더 어두운 구석으로 내모는 것이 현실이다. 성폭행을 친고죄로 규정한 건 이런 점도 고려한 것이지만 잘못된 현실은 고쳐야지 일부러 눈감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난달 12일 인천에선 세 살짜리 아들과 낮잠 자던 임신 8개월 주부가 성폭행을 당했다. 형편이 어려워 반지하 집에 살면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걸 자책하는 남편은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끝까지 사랑하며 살겠다. 성폭행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엄하게 처벌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글을 올려 많은 누리꾼을 울렸다.

법은 여성의 성을 여전히 거래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거기엔 일부 왜곡된 인식도 있다. ‘피해자는 보호하고 범죄자는 처벌하자’는 이 남편의 절규에 내 일처럼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성의 성을 저울에 올려놓고 돈으로 가늠하는 일은 우리 나라가 과연 정의로운 법치국가인지 묻게 한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서진환#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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