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발단은 부부동반 모임이었다. 아내를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축하할 일이 생긴 것 아니냐”고 에두르는 정도는 차라리 고마웠다. “결혼식 때의 그분이 맞느냐”고 묻는 녀석도 있었다.
남자는 언짢은 기분을, 그날 밤 아내에게 조롱으로 쏟아냈다. 야식을 먹으면서 ‘살찔 텐데’ 타령을 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장단을 맞춰준 것이었다.
“알면서 그렇게 먹어대냐? 굴러다니겠다.”
아내가 결혼 전처럼 날씬해지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자기 관리를 내팽개친 듯한 그녀의 모습에 실망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바다코끼리’라고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격분한 아내가 남자와 어머니, 누이들을 싸잡아 반격하는 바람에 싸움이 커졌다.
다음 날, 남자는 신문을 보다가, ‘우람해지는’ 아내에게 왜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 새로운 학술적 근거를 발견했다. 미국 전문가 집단이 부부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아내가 살이 찌면 부부 관계가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조사됐다는 것.
연구팀은 외모를 따지는 남자들의 성향에도 원인이 있지만, 아내의 체구가 점점 커질 경우 우월감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남편들에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바다코끼리라고 느꼈나?
“너는 제수씨한테 ‘능력도 없는 주제에…’라는 말을 들으면 좋겠냐?”
남자는 선배한테 부부싸움 얘기를 꺼냈다가 핀잔을 들었다. 아내를 ‘바다코끼리’에 비유했으니, 여성으로서 가장 아픈 부분에 대못을 박는 만행이었다는 거다. 또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여자들이 더 먹게 된다는 것.
남자의 ‘능력’이, 여성들에겐 ‘다이어트’란다. ‘능력’이나 ‘다이어트’나 자기관리라는 점에서, 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싶지만 막상 그것을 이루고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자들이 늙어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여성들 역시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몸무게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했다.
남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요가 동작을 하고 있었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남자는 선배에게 배운 대로 해봤다.
“나, 이제는 일찍 들어올게. 같이 운동 다니자.”
그 말에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반색을 하며 뭔가 말하려는 아내의 표정에서, 남자는 선배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아내에겐 ‘살 빼라’는 지적질보다, 함께 운동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심이 더욱 유효할 것이었다. 남자는 아내의 다이어트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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