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악마’ 편드는 친북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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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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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준 씨는 1998년 9세 맏아들을 데리고 탈북했다. 아내와 차남이 굶주림으로 세상을 뜬 뒤였다. 유 씨는 일단 혼자 한국에 들어온 뒤 중국에 남겨둔 아들을 데려오려고 백방으로 손을 썼다. 탈출하던 아들 일행은 2001년 중국-몽골 국경 근처에서 공안에 발각돼 흩어졌고 아들은 사막지역을 헤매다 탈진해 숨졌다. 유 씨는 몽골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낸 끝에 아들의 유골을 가져와 경기 파주 통일전망대에서 추도식을 치렀다. 그의 사연은 영화 ‘크로싱’의 모티프가 됐다. 유 씨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탈북자 지원 활동을 벌였다.

▷영국의 종신 상원의원이자 ‘북한에 관한 상하원 공동위원회’ 의장인 데이비드 올턴 경은 8년 전 유 씨를 만나 충격적인 북한 인권 상황을 전해 들었다. 이를 계기로 탈북자들을 의회 청문회에 초청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북한이 항의하자 “내 눈으로 봐야겠다”며 받아쳤고 그 후 4차례 방북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올턴 경은 본보 인터뷰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고서도 침묵한다면 그 역시 악마와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좌파 진영이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쓴소리다.

▷남한의 40년 전 개발독재는 거품을 물고 성토하면서 북한의 현재진행형 3대(代) 세습 독재와 인권 탄압은 “북한 내부의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며 싸고도니 제3자에게서 이런 핀잔을 듣는다. 친북좌파는 북한인권법을 만들자고 하면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반발하고, 반핵(反核)을 외치면서도 북한의 핵실험은 ‘자위권적 조치’라며 두둔한다. 박선영 의원이 올 초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해 열흘 넘게 단식농성을 벌이는 자리에 진보 인사들은 코끝도 비치지 않았다.

▷소련은 한때 조지 버나드 쇼, 앙드레 지드 같은 유럽 지식인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나라였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소련의 복지 체계와 계획 경제를 찬양했다. 러셀이 훗날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빠져들 환멸을 막아준다”고 말한 것은 양심고백이었을까.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소련 방문 때 누군가로부터 쪽지 한 장을 건네받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용은 이랬다. “여기서 보고 듣는 전부를 믿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허락받은 것만 말할 수 있고 당신까지 모두 감시받고 있거든요.”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횡설수설#친북#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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