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원]위안부 문제를 국제 이슈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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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5일 03시 00분


김영원 외교통상부 한일 청구권 협정 대책 전담 대사
김영원 외교통상부 한일 청구권 협정 대책 전담 대사
2009년 6월 8일 평화와 정의의 도시로 알려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참으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 독일, 네덜란드 성노예전’으로 명명된 행사는 네덜란드 비정부기구(NGO)인 일본명예채무촉구재단의 판 바흐텐동크 이사장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네 살 때인 1942년 일본이 점령한 인도네시아에서 가족 대부분을 잃은 바흐텐동크 회장은 1990년 재단 결성 이래 매월 두 차례씩 일본 대사관 앞에서 피해를 본 네덜란드인들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해 왔다.

그날 참가자들의 눈길은 행사장 구석에서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행사를 지켜보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던 판 데르 플루흐 여사에게로 쏠렸다. 86세의 고령이지만 그녀는 생생하게 당시의 강요된 위안부 생활을 회고했다. “일본군에게는 쾌락의 장소였지만 나에겐 두려움과 슬픔, 수치의 지옥이었다. 나는 반항할 의욕마저 잃었다. 그저 빨리 다치지 않고 끝나기만 기도할 뿐이었다.” 플루흐 여사는 일본이 자기반성과 책임 인정에 인색한 것을 보면 화가 난다고 하면서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젊은 세대에게 일본의 만행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소박한 바람이라고 하셨다.

당시 네덜란드 주재 대사였던 필자는 바흐텐동크 회장과 플루흐 여사에게 한국에서 매주 열리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에 참석해 증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고령으로 방한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두 분은 필자에게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 줄 것을 당부하셨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더욱 노력할 것을 촉구한 헌법재판소 결정 1주년이 지나는 지금 그분들의 당부 말씀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피해자의 대일 배상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됐는지 여부와 관련한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협정 제3조에 따라 해결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 이후 우리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협정에 규정된 양자협의를 일본 측에 공식 제안했고, 정상회담을 비롯해 외교장관 회담 및 실무 접촉 등을 통해 문제 해결을 적극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일관되게 법적 책임을 거부하는 기존 방침을 견지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다음 절차로 협정에 규정된 중재에 회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회의를 통해서도 위안부 문제를 직간접으로 제기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의 공식적인 책임 인정 여부인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협정 체결 당시 논의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위안부 문제와 같은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한 국가책임은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사실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통해 위안소의 설치, 운영에 있어 공권력 동원 등을 통한 강제성을 인정했다. 국제법상 국가의 행위가 있고 그 행위가 당시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 국가 책임이 성립하게 되므로 일본의 국가 책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일본은 도의적 책임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일본이 피해자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고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헌재 결정 이후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잘못할 수 있으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명명백백한 위안부 문제가 제3자적 해결 방식인 중재에 의해 다루어지기에 앞서 우리는 일본의 용기 있는 변화를 국제사회와 함께 지켜볼 것이다. 플루흐 여사의 소망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영원 외교통상부 한일 청구권 협정 대책 전담 대사
#기고#위안부#일본#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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