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는 일본인 지인은 최근 중국인들이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일본인이라고 대답했다간 택시나 식당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이달 10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국유화하기로 선포하면서 시작된 중-일 간의 분쟁이 뜨겁다. 8개 섬으로 이뤄진 센카쿠 열도는 5.56km²(중국 측 6.34km² 주장)의 작은 군도다. 일본은 청일전쟁 당시인 1895년 1월 이곳이 주인이 없는 무주지(無主地)라며 내각 결의를 거쳐 영토로 편입시켰다.
중국은 무주지라는 말에 펄쩍 뛴다. 과거부터 대만의 부속섬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청일전쟁의 패배로 1895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일본에 할양한 땅”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질서를 규정한 카이로 회담 및 포츠담 선언에 따라 당연히 중국에 귀속되어야 할 땅이 미군에 의해 관리되다가 1972년 일본으로 넘겨졌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섬이 갑작스레 열전(熱戰)의 장소로 떠오른 것은 섬 주변 해역의 자원 때문이다. 최근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 이곳엔 일본이 100년간 쓸 수 있는 석유(77억 t) 및 천연가스와 320년간 사용 가능한 망간, 1300년이나 쓸 수 있는 코발트가 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이나 군사전략상 가치도 크다.
그러나 중-일 간 영토 분쟁이 벌어진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굴기(굴起)’ 즉 중국 국력의 급부상이다. 1994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592억 달러로 일본(4조7604억 달러)의 11.7%에 불과했다. 당시 일본의 GDP는 세계 1위 미국(7조175억 달러)의 3분의 2에 해당했다.
하지만 2010년 중국의 GDP는 일본을 따라잡은 데 이어 지난해엔 6조9885억 달러로 일본(5조8554억 달러)의 1.2배로 늘었다. 17년 새 일본의 GDP는 23% 증가한 데 그쳤지만 중국은 1150%나 늘었다. 1994년 중국의 경제력은 한국의 1.32배였으나 작년에는 6배로 차이가 커졌다.
그동안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하던 중국은 부쩍 탄탄해진 근육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자긍심을 한껏 키운 13억5000만 명의 중국인들 역시 ‘감히 누구한테 덤벼’라는 자세가 팽배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렇게 커진 몸집을 발판 삼아 점차 주변국과 영토 분쟁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인도와의 영토 갈등이 유일했지만 지금은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 주변국만 7개나 된다. 최근엔 한국의 이어도까지 분쟁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중-일 영토 분쟁에 임하는 중국의 논리다. 포츠담선언의 제8조 보충규정에 따르면 일본은 대만은 물론 류큐(琉球) 제도(현 일본의 오키나와)도 중국에 반환하도록 돼 있다. 지금은 대만의 부속 섬이라며 센카쿠 열도만 달라고 하지만 오키나와까지 되돌려달라고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중국의 학자들은 “오키나와를 관리하던 미국이 중국에 반환해야 하는데 일본에 넘겨줬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앞으로 3, 4년이면 ‘구매력을 감안한 국내총생산’에서 미국을 추월하고 10년이면 GDP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부쩍 커진 중국의 몸집을 감안하지 않고 동북아의 새 질서를 짜기는 어렵다.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한국 일본 등 중국의 주변국엔 이제 발등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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