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수진]문재인에게 부메랑 된 ‘혁신’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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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7일 03시 00분


조수진 정치부 차장
조수진 정치부 차장
지난해 9월 6일. 야권에선 일대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오후 4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던 안 원장은 ‘시민후보’를 자임한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지지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1시간 전인 오후 3시, 박 변호사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만나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의했다.

오후 7시엔 문 이사장이 주도하는 야권 통합 추진모임 ‘혁신과 통합’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발족식을 가졌다. 문 이사장을 비롯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등 16명이 공동대표로 추대됐다. 이들은 제안문에서 “누구보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고 자기혁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문 이사장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야권 단일후보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의 불출마에 대해 “아름다운 결단”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날 안 원장의 양보로 야권 단일후보론의 당위성과 추진력이 태풍처럼 세를 늘리면서 ‘혁신과 통합’의 역할도 함께 커졌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레이스 초반, ‘혁신과 통합’은 민주당에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고 압박하며 안팎으로 박 변호사를 지지했다. 결국 50년 전통의 제1야당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했고, ‘민주당 주도의 야권통합론’도 잦아들었다.

박 시장 당선 뒤 ‘혁신과 통합’은 민주당을 제치고 야권의 가장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문 이사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인 11월 1일 민주당 생활정치연구소 초청 간담회에서 “민주당이 다 버리고 다 던질 수 있다면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이긴다”고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 내에선 “이름 하나로 민주당이 지향할 두 가지 가치인 ‘혁신’과 ‘통합’을 선점당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뼈아픈 자성이 터져 나왔다.

한 달 뒤인 12월, 결국 민주당은 해체됐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손을 잡고 ‘민주통합당’이란 신당을 창당했기 때문이다. 문패를 바꿔 단 신당에서 ‘창업 공신’인 문 이사장과 이 전 총리 등은 전직 당대표나 전직 국회의장 등에게만 주어져 온 ‘상임고문’이란 직함을 받았다. 당의 최대주주인 친노(친노무현)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이 전 총리는 당 대표로, 문 이사장은 대선후보로 각각 선출됐다. 결과적으로 ‘혁신과 통합’이 당대표와 대선후보를 배출한 셈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 문 후보가 ‘혁신’과 ‘통합’을 내걸고 야당의 문을 두드린 지 꼭 1년 만에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새로운 정치’를 내세워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야권후보 단일화의 전제조건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꼽았다. 야권후보 단일화의 파트너인 문 후보에게, 문 후보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혁신’과 ‘통합’을 안철수식 버전으로 바꿔 문 후보를 몰아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어찌됐든 1년 전 민주당에 기득권 내려놓기를 요구하며 혁신과 통합을 외쳤던 일이 문 후보에게 부메랑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문 후보는 민주당 혁신과 야권 단일후보란 통합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까.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
#문재인#혁신#통합#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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