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어른들은 우리가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낭비한다고 나무랐던 것 같다. 이제 과거의 우리는 어른이 됐고, 어른이 된 우리는 지금 젊은 세대가 휴대전화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야단을 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뿐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는 스크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혹자는 끔찍한 일이라고까지 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운이 좋은 세대이고, 게다가 매우 현명하다. 어린 시절의 텔레비전은 서로를 소외시켰다. 온 국민이 동시에 한 프로그램에 열광하던 시절을 상기하면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경험이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은 마치 터널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같은 방에 있는 사람조차도 철저하게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늘날의 스크린은 매우 매력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연결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네트워크 시대(Networked Age)’를 정의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손 안의 휴대전화로 방대한 양의 지식에 접근이 가능하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하게 됐다. 비록 나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어떤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지만 인터넷은 훌륭한 선생님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
구글 직원이기도 한 피터 노르빅 박사와 제바스티안 트룬 교수는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교수로서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들의 학교 수업을 온라인에서 공유한 것이다. 그러자 세계에서 10만 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 신청을 했다. 학기가 끝났을 때 이 가운데 248명이 만점을 받았다. 이들 중 스탠퍼드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즉 이 248명의 학생은 엘리트 교육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이런 기회가 없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례는 단지 한 대학교의 한 강의에 불과하다. 여기에 모든 학교와 선생님들의 수가 곱해진다면 파급력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하는 스마트폰은 사실 학생들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일례로 한국의 한동대에는 책상마다 반영구 근거리무선통신(NFC) 스티커를 붙여 놓아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출석 체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네트워크에 연결된 환경이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효과가 있음을 보여 주는 예다.
인터넷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적절한 시기에 등장했다. 서구 사회와 한국은 모두 고령화 및 핵가족화에 직면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을 극적으로 개선해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인터넷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터넷은 전례 없는 규모로 연구 활동을 조율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DNA와 건강, 영혼과 같은 내용에 관한 지식이 글로벌하게 확대되고 공유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지구상의 수많은 과학자가 협업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는 핵심 과학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세계 차원에서 보편적인 이슈를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됐다.
건강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미 엄청난 양의 건강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어떤 약은 특정 약물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그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해준다. 건강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의사를 찾아주고,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의사는 해당 환자의 건강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의 발전은 더 새롭고 튼튼한 정부 체제 구축을 뜻한다. 정부는 방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정부를 더욱 정확하게 판단하고 다른 나라 정부와도 비교할 수 있다. 이는 국가 단위뿐 아니라 지방 단위로도 일어날 수 있으며 그 결과 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지역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우연치 않게 그런 활동이 글로벌한 차원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휴대전화와 문자를 통해 개도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작은 프로젝트는 국경을 초월해 전파됐으며 이제는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글로벌 금융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이런 성과는 세계 곳곳에서 기대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디지털 데이터는 모든 차원에서 사회를 변화시킨다. 정부는 프로그램의 성과를 바로 측정할 수 있고, 언론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시장은 더 나은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이 다양한 정보나 대안적 사회 비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확대된다. 우리 시스템을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있고 여기에서 요구사항이 발생한다. 현존하는 체제는 이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되고, 결국 전통과 특정 이해관계가 복합된 기존 시스템은 새로운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기술 용어로는 이를 ‘강제된 업그레이드(forced upgrade)’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성장은 혁신도 배가(倍加)하고 있다. 한국은 이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이다. 개방적이고 글로벌한 국가와 기업은 폐쇄적이고 일국 차원에 머무르는 국가와 기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마트폰 열풍을 통해 한국인 엔지니어들은 글로벌 기술 스탠더드를 겸비하게 됐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구글은 한국 스타트업 회사들이 글로벌한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도움을 주고자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30개 팀 가운데 13개 팀은 이미 회사를 차렸다. 그중 6개 팀은 상용화된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나머지 6개 팀은 150만 달러(약 16억8000만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아이클리닉(iClinic)’이라는 유료앱(499달러)은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사용자 200여 명이 구매했다. 이 앱은 올해 5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10만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내고 있다. 학생 대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클래스팅(Classting)’은 약 2개월 만에 5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이런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 한국은 자국의 혁신을 글로벌한 단계로 이끌 준비가 돼 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미래의 아이들이 지식, 경이로움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세대이길 바란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미래는 그렇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더욱 효율적으로 진보할 것이다. 알람시계가 사라지고 시끄러운 소리 대신 목소리로 된 힌트나 음악소리가 우리를 깨운다. 집은 수면 사이클에 맞춰 최적의 시간에 자동으로 커튼을 걷고 잠을 깨운다. 무인자동차는 사고를 줄여 주고 우리에겐 통근 및 통학 때 더 많은 개인 시간이 생긴다. 직장에 가면서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상상을 해보라. 오늘날 네트워크와 데이터의 능력을 보면 이런 미래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기술 분야에서 앞서가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젊은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듯 답은 간단하다.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열심히 하면 된다. 더 많이 공유하고, 더 많이 배우고, 세상을 향해 자신을 더 활짝 여는 것이다. 어떤 연세대 학생은 버스 운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앱을 만들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켰다. 이것이 바로 삶의 모든 측면을 연결하고 향상시키는 인터넷을 활용한 다음 세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출발점이다.
내 세대는 이러한 미래 세대를 위해 플랫폼을 최대한 넓고 개방적으로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교육, 과학, 기술의 전 영역에서 큰 파급 효과를 낳는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저주가 아닌 축복이며 이를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얻은 혜택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2001년 막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신생 벤처기업 구글은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이 30대의 젊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대신 회사를 맡아줄 경험 있는 전문경영인을 원했기 때문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처음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만이 구글 CEO를 맡을 수 있다고 우겼지만 잡스가 애플을 떠날 리가 없었다. 그때 에릭 슈밋과 만났다. 소프트웨어 업체 노벨과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을 거친 슈밋은 창업자들보다 나이가 열여덟 살 많았지만 페이지와 브린 못지않게 컴퓨터에 정통해 환영을 받았다.
이후 슈밋이 이끄는 구글은 작은 벤처기업에서 직원 5만 명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슈밋은 ‘삼두정치’, 즉 운영은 자신이 맡고 페이지와 브린은 제품 개발과 미래 전략에 몰두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창업자 브린은 이때를 회상하며 “‘어른’의 감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슈밋은 2011년 1월 10년 만에 CEO 자리를 페이지에게 내주고 대외활동을 전담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퇴임사에서 “구글은 더이상 어른의 감독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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