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명절 잔소리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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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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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의 고교생 딸이 추석 연휴에 혼자 집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대외적 명분은 ‘중간고사 대비’였으나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와 과도한 관심을 피하기 위해 ‘잠수’를 타려는 것이다. 어릴 적엔 지방에 있는 본가와 외가를 돌며 인사를 다니고 용돈을 챙기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지만 커가면서 친척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 다 공부 잘했으니 너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문제없지?” 10대 소녀에겐 매우 민감한 외모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아이고, 이 녀석 다 컸네. 키가 크니 몸무게도 60kg 넘겠는데?”

▷명절에 들뜬 마음으로 고향집이나 가족 모임을 찾았다가 되레 스트레스만 쌓여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명절 스트레스’가 음식 하랴 설거지 하랴 집안일에 시달리는 주부들에게 한정됐으나 요즘 들어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명절이 괴로운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여 근황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으레 “요즘 몇 등 하냐” “언제 아기를 낳을 거냐” 같은 질문이 나오고, 승진이나 아파트 평수 등을 두고 남과 비교하는 이야기도 오간다.

▷‘싱글남녀’ ‘백수남녀’ 마음도 주부들 못지않게 무겁다.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차라리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20, 30대 미혼남녀 13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명절 스트레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로 41.6%가 ‘빨리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꼽았다. ‘소개팅’이라도 해주면서 그런 말을 하면 미움을 덜 받을 것이다. ‘돈 많이 벌어라’ ‘좋은 직장 구해라’ ‘다이어트 해라’ 등도 당사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처를 끄집어내 왕소금을 뿌리는 말들이다.

▷어른들부터 입시 취직 결혼 등을 주제로 한 명절 잔소리를 자제해야 한다. 아무리 애정에서 우러나온 덕담도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면 안 하는 게 낫다. 듣는 쪽에서도 불편한 충고와 곤란한 질문에 발끈하기보다 염려하는 마음만 받고 흘려 넘기는 것이 현명한 자세다. 한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척을 만나는 명절에 모쪼록 솜털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대화가 오가는 기쁜 연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다정(多情)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횡설수설#명절#잔소리#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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