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울어보자고 몰래 오르던 대여섯 살 적 지붕 새가 낮게 스치고 운동화 고무창이 타도록 뜨겁던 기와, 검은 비탈에 울음 가득한 작은 몸 눕히고 깍지 낀 두 손 배 위에 얹으면 눈 꼬리 홈 따라 미끄러지는 눈물 소리 들렸다
- 울보야, 또 우니? 아무도 놀리지 않던 눈물 전곡(全曲) 감상실
어이쿠, 얼마나 펑펑 울었으면 눈물 소리가 나! 대여섯 어린 나이에도 혼자 울 곳을 찾아 들었다니, 자의식 강하고 새침한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물 흘리고 있는 자기 얼굴을 본 적 있는가? 어렸을 때 일인데, 나는 서럽거나 분해서 혼자 울다가 종종 거울 앞으로 달려가곤 했다. 각막에서 배어나오는 눈물, 속눈썹을 적시며 눈 밑으로 흘러내리는 눈물, 하염없는 그 눈물. 눈물 자체를 감상하는 재미에 정신 팔린 새 서러움도 노여움도 잦아들곤 했다.
우리는 왜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꺼리고, 울지 않으려고 애쓸까?
‘시간이 나면 거지같은 슬픔들이 우우/몰려오겠지 더럽게 추근대며/물고 늘어지겠지 내장까지 다 던져주면/가벼워질 수 있겠지’(이상희 시 ‘시간이 나면’에서)
울음을 참지 말자. 내장까지 다 내던져 아이처럼 울자. 그러면 속이 시원해지리라. 울 곳이 마땅치 않으면 노래방에 가서 좋아하는 노래를 쩌렁쩌렁 틀어놓고 울어 보자.
사연도 묻지 않고, “그랬어? 그랬구나. 그래, 그래, 그래” 하며 토닥여주는 이 옆에서 온몸에 찬 울음을 터뜨릴 수 있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결코 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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