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구축함과 헬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우리 군이 F-15K 전투기와 구축함을 출동시키는 긴박한 사태가 지난달 21일 독도 주변에서 벌어졌다. KADIZ는 영공 외곽 상공에 설정된 구역으로 준(準)영공에 해당한다. 일본의 군함과 군용기라고 할 수 있는 자위대 함정과 헬기의 KADIZ 침범은 중대한 주권 침해다. 다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려면 24시간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도 일본은 무시했다.
이번 사태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과거사를 왜곡하고 부당한 영유권을 거듭 주장한 일본의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에는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을 보내 대응하고 있다.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섬에는 해경 선박을 배치하면서 독도 주변에 4200t급 대형 군함을 보낸 일본의 행태에는 한 세기 전 우리를 침탈했던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일본은 우리 군이 출동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훈련을 위해 가는 중이다. 적대 의도가 없다”고 했지만 속 보이는 거짓말이다. 우리 군은 일본 구축함에서 헬기가 두 차례 이착륙 훈련을 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우리 군의 대비 태세를 시험해보기 위한 침범이 아니고 단순 통과라면 헬기 이착륙 훈련을 할 까닭이 없다. 정부는 일본에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일본은 이르면 이달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한국은 ICJ의 강제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제소에 응하지 않으면 ICJ는 개입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일본이 제소를 강행하는 목적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KADIZ 침범은 ICJ 제소를 앞두고 한일 갈등을 증폭시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한 카드다.
세계는 일본이 1910년 한국을 강제 병합한 역사를 알고 있다. 일본이 아무리 요설을 늘어놓더라도 병합에 앞서 독도를 강제 편입한 사실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이 독도 도발의 강도를 높이면 한일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28일 일본 지식인과 시민단체 인사 1270명이 일본의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일본은 이들의 호소를 귀담아듣고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