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리고 빌딩으로 돌아와서 일하다가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내쉬듯 전화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다 가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와 있어서 그를 그렇게라도 보내게 한다
화자는 도시 직장인이다. 일터가 빌딩에 있고, 근무 중에 친구에게 전화 걸어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정도 지위는 된다. 오늘을 향해 매진하며 성실히 살아왔을 것이다.
시에 ‘아무것도 아닌’이 세 번 나온다. ‘아무것도 아닌’의 반대말은 ‘가치 있는’일 것이다. 예컨대 능력, 매력, 쓸모, 근면, 이익, 부귀, 영화, 명성, 권력 등등의. 뭇사람이 이 말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획득하려 애쓰는 건 다행한 일이다. 그 지향과 노력으로 이 세상이 무사히, 믿음직스럽게 굴러가는 것일 테다.
그런데 쓸쓸하고 가슴이 허전할 때, 우리의 마음은 왜 ‘아무것도 아닌 것’에 기우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와 있’는 가을한테 들어보자.
화자가 친구와 나눈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는 필경 유쾌하거나, 은근하고 다정했을 테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침울하고 암담하게 나누고 있을 사람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매우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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