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물가상승률이 3개월 연속 2% 이하에 머물렀다. 7월, 8월, 9월 각각 전년 동월 대비 1.5%, 1.2%, 2.0% 상승하였고 특히 8월의 1.2%는 12년 3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낮은 물가상승률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사실 실제 물가와 체감 물가의 괴리 현상은 반복되어 왔다. “옛날에는 자장면 한 그릇에 1000원이었는데…, 1만 원만 들고 나가면 하루 종일 써도 남았는데… 물가가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며 물가 자료를 믿지 않는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소비자 물가지수는 소비자가 주로 사용하는 품목들의 평균 가격이다. 많이 사용하는 품목에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가격이 안 오른 제품들은 평소와 차이가 없으므로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에 가격이 많이 오른 제품들은 기억에 남게 되어 실제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소비의 고급화와 소비지출의 증가를 물가 상승으로 오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이었을 때 외식비에 비해 사회인이 되어 쓰는 외식비가 훨씬 비싸진다. 더 좋은 분위기에서 양질의 식사를 하게 되어 외식비가 더 비싸졌을 수도 있는데, 그러한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물가 상승 폭을 크게 생각할 수 있다.
소비자 물가지수 품목선정에 한계
이미 물가가 많이 오른 상태일 경우 올해 덜 올랐다고 물가가 싸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000원이던 기름값이 지난 몇 년간 급격히 올라 작년에 2000원이 되었지만 올해는 2020원으로 변화해 기름값 상승률이 1%에 불과해도 현재 기름값이 싸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즉, 물가상승률이 의미하는 바가 물가 수준 자체가 아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이번 달의 물가상승률 1%는 지난 1년간 물가가 1%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많은 소비자는 그 정확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 물가 수준 자체가 비싸다는 이유로 물가자료를 믿지 않으려 한다. 앞의 예에서 기름값 상승률 1%는 단지 작년에 비해 1% 올랐다는 것으로 현재 기름값이 비싼지 싼지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2020원이라는 비싼 기름값을 생각하며 1% 상승률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욱이 소비자들의 소득과 부는 유한하기 때문에 물가가 싸다고 느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체감 물가와 실제 물가의 괴리현상을 소비자들 탓만으로 돌릴 수 있는지 하는 생각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지난 20년 동안 소비자 물가지수가 얼마나 올랐을까? 확인해 보니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소비자 물가지수는 2.1배가량 올랐다. 20년 전을 회상해보았지만 물가가 2.1배보다는 확실히 더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비자 물가가 다양한 이유로 물가상승률을 과대평가한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결국 제대로 평가한다면 2.1배도 오르지 않았다는 것인데, 체감 물가와 확실히 차이가 난다. 결국 다른 문제점들도 있을 수 있다.
우선 품목 선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혈안이 되어 가격 상승이 예상되거나 가격 상승을 제한하기 어려운 품목들을 제외하거나 가중치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사실 소비자 물가지수 개편 시 이러한 논란이 있어 왔다. 예를 들어 작년에 물가지수를 개편할 때 금반지를 제외했는데 금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경제 통계에 대한 인식이 선진화되면서 최근에는 그러한 사례가 거의 없을 것이나 과거에는 상당히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사실 불과 몇 년 전에도 어떤 정치인이 담배 가격 인상이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며 담배를 소비자 물가에서 제외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소비자에게 중요한 품목들의 가격을 안정시킬 방안을 생각하지 않고, 가격이 안정적인 품목들만 가지고 숫자 놀음을 하겠다는 주객이 전도된 발상이다.
정부가 주요 품목의 가격 상승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 수도 있다. 실제로 교통 요금 등의 공공요금, 주요 농산물, 공산품 가격 상승을 제한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소비자가 많이 사용하는 제품의 가격을 제한하여 소비자의 생활비를 낮춘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물가수준이나 다른 품목들의 가격과 괴리가 생길 수 있고, 상대가격의 왜곡으로 소비자 선택이 왜곡되고 경제의 효율성이 감소할 수 있다. 특히 소비자 물가지수의 품목 선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 문제점은 더욱 크다.
정확한 물가지표 구성에 힘써야
소비자 물가지수는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물가지표이다. 소비자인 모든 국민에게 중요하고 현재 통화정책의 근간인 물가 안정 목표제의 주요 대상이다. 단기적 시각을 가지고 성과주의적 목적 아래 낮은 물가상승률을 과시하기보다는 경제의 정확한 상태를 보여줄 수 있는 물가 지표를 구성하여 경제 행위의 왜곡을 최소화하고 경제 상태에 대한 적절한 정책적 대응을 위한 주요 지표로써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