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차갑부]전문대의 굴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9일 03시 00분


차갑부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과 교수
차갑부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과 교수
전문대 졸업자들의 취업이 4년제 대학 출신과 고졸에 치여 저조하다는 최근 동아일보의 보도가 있었다. 최근 고졸 채용 바람이 불면서 전문대 출신을 주로 뽑던 회사들이 고졸 이상으로 지원 자격을 넓히자 전문대 출신의 취업이 한층 어려워진 것이다. 전문대 출신들은 “가뜩이나 4년제 대학 졸업자에 비해 핸디캡이 있는데 고졸보다 2, 3년 더 공부한 보람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바야흐로 ‘전문대의 굴욕 시대’다.

한국의 전문대는 1970년대 국가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능 인력의 양성 요구에 따라 탄생했다. 그 시절 전문대는 중견 직업인 양성을 목표로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인력을 배출해 당시 국가적 과제인 ‘잘사는 국가’를 건설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고질적인 학력사회의 풍조 등으로 전문대는 입학 자원의 감소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고졸자에 대한 취업 장려 정책으로 전문대는 대학과 고등학교 사이에서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왜 이렇게 됐나. ‘심오한 학술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의 목표를 내건 4년제 대학은 뒤늦게 직업교육에 눈을 돌려 전문대가 그동안 힘들여 개발한 유망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정부는 취업률에 따라 대학을 평가하는 등 전통적으로 전문대가 공들여 쌓아 온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고등교육법상의 차별적인 교육목표에도 불구하고 모든 유형의 고등교육기관이 직업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모태적 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가 수업연한이 짧다는 이유로 후발 주자에게 밀리게 된 것이다.

정부가 직업교육을 강조하면서도 고등 직업교육기관으로서 오랜 전통을 지닌 전문대에 대해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못한 점이 아쉽다. 정부는 이제라도 전문대가 그동안 쌓아 온 직업교육의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 또 직업교육에 관한 여러 해외정책 사례를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해 전문대를 직업교육의 중핵으로 하는 ‘직업교육의 선진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정책을 수립할 때는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 교수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2조에 명시된 7개의 ‘학교의 종류’도 재편할 필요가 있다. 추구하는 교육목표에 따라 연구 중심과 직업교육 중심 대학 등으로 나눠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수업연한이 아니라 교육목표에 따라 대학을 구분해 국가 사회 발전을 위해 균형 있게 인재가 배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업연한에 따라 대학을 등급화한다면 뿌리 깊은 학력 사회의 폐해로 인해 직업교육이 소외되는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풍부한 인적 및 물적 자원, 무엇보다도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전문대가 비교 열위의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사회 각 분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문대에 대한 규제는 아직까지 풀어지지 않고 있다. 전문대 안팎에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수업연한 다양화의 필요성과 방법론이 결론으로 도출되었으나 아직도 설립 당시의 수업연한을 거의 오차 없이 유지하고 있다. 또 전문대에서도 심화과정을 통하여 학위를 취득할 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으나 다시 입학해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잠재적 수요자들의 진학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 탄생을 앞둔 시점에 정부는 새로운 시각에서 직업교육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 주길 바란다. 전문대가 열정을 갖고 실질적으로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 직업인’을 양성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주문한다.

차갑부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과 교수
#전문대#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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