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발생한 경북 구미시 산동면 불산가스 누출 사고는 일본 후쿠시마 현 원전 사고를 연상시킨다. 산동면 주변 봉산마을의 농작물이 말라죽은 모습에서 일본 원전 방사선 누출 피해지역의 폐허와 두려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화학반응에 무관한 식물이 고사할 정도의 맹독성 화학물질 오염에도 속수무책인 공장이나 정부 대책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불소(F)가스는 인체에 치명적인 가스다. 불소화합물인 불산(HF)은 독성이 강한 강산으로 반응성과 부식성이 강해 인체에 대단히 유해하다. 불소가스와 불산은 암석과 광물을 녹일 정도로 강한 화학적 특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과거에 불소가스 분리 연구를 하다 많은 과학자가 희생됐다. 프랑스 화학자 앙리 무아상은 불소가스를 1886년 처음으로 안전하게 분리한 성과로 190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불소가스와 불산은 잘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불소가스와 불산이 들어 있는 수소원자를 불소로 치환해 만들어진 불소화합물은 화학적으로 안정적이고 무해하다. 내열성과 내약성도 뛰어나다. 그래서 불소를 함유한 테플론 재질의 합성수지가 전기밥솥, 프라이팬 등 각종 가전제품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액체 불소함유 유기화합물은 인공 혈액으로 사용되며 고분자 세정제, 냉매제로도 널리 쓰인다. 불화수소나트륨 수용액은 충치 예방제나 구강 보호제로 사용된다.
그러나 독성이 강한 만큼 다루는 데 조심해야 한다. 후드와 환기 시설이 잘 설치된 실험실에서도 불산 시약을 사용할 때는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불산은 인체의 피부 점막조직인 단백질과 반응해 염증, 발진을 일으키고 피부를 손상시켜 통증이 지속된다. 30년 전 최고의 안전성이 갖추어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던 중 직접 겪은 일이다. 불산을 테플론 비커에 주입하는 과정에서 비닐장갑의 미세한 흠집을 통해 극소량의 불산 용액이 스며들어 새끼손가락 끝에 닿게 되었다. 물처럼 무색이고 극소량이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손가락 끝에서 심한 통증과 함께 발진이 일어나 병원 치료를 받은 공포의 경험이 있다.
이 같은 유독성 가스나 강산은 직접 피부에 닿지 않도록 피하는 게 최선이다. 불산이나 불소가스에 노출됐을 때는 신속히 그 지역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노출 부위를 물로 씻고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사고 발생 12일째인 8일에야 구미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누출 가스의 유독성이 심각한 만큼 발생 직후 즉각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곧바로 주민과 가축을 모두 안전지대로 대피시켰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다 해도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일어난 즉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고려하는 등 기상조건을 감안해 주변 지역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하고, 예상피해 지역 주민 역시 즉각 안전지대로 대피시켜서 2차 피해를 줄여야 한다.
향후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지역이나 실험실에는 유해가스 자동 감지장치를 반드시 설치·운영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10여 년 전 미야케지마 화산이 분화한 뒤로 유해가스 자동 감지장치를 화산 지역에 설치해 화산가스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 안전 기준치를 넘는 유해가스가 발생할 때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동 경고 방송으로 사전 대피를 유도하고 있다. 유해화학물질 사용 및 취급 기관은 철저한 유해물질 기초과학교육과 안전교육, 대피요령, 취급 관리지침을 재점검해야 한다. 이번 사고는 유해물질 관련 사회 안전망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린 값진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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