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소득불평등과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는 경제민주화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도 여야 공히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대기업 개혁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노동조합, 관료 같은 기득권의 횡포로 왜곡된 시장질서를 바로잡고 민생을 보호하는 일이다. 대기업이 약자를 압박해 제 잇속만 차리는 약탈적 관행이나 재벌 총수의 불법행위는 설자리가 없어야 한다.
14일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경제의 기득권을 걷어내겠다”며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으로 7가지 재벌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안 후보는 재벌 총수의 편법 상속,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약속했다. 금산분리(金産分離)와 지주회사 규제 강화, 순환출자 금지, 소액주주 보호 대책과 함께 계열분리명령제 도입과 대통령 직속으로 재벌개혁위원회 설치 방안도 제시했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재벌개혁 외에도 금융, 노동, 공공개혁 등으로 확장하고 재벌 개혁의 단계적 추진 같은 밑그림을 제시한 점은 타 후보와 다른 점이다.
안 후보는 “재벌 개혁은 기업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상당수 공약이 다른 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재탕하거나 과거로 되돌리는 ‘회전문 규제’다. 순환출자는 과거 정부가 총수의 지배력 집중을 견제하기 위해 지분 분산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지분이 줄어든 총수들이 경영권 보호 수단으로 활용했다. 계열분리와 구조조정, 신규투자 과정에서도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됐다. 정부도 이를 조장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지주회사는 1980년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합법화하는 제도라는 이유로 금지됐다가 1999년 순환출자 해소를 명분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금융과 산업이 결합된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을 막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금산분리는 국내 자본이 금융기관을 소유할 기회를 제한해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장악과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주회사와 금산분리 규제를 2007년과 2009년 규제 완화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안 후보의 발상은 정책 혼선과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금산분리와 지주회사 규제까지 강화하다 보면 기업들의 부담을 키워 소모적인 갈등을 부를 것이다.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기업구조의 틀을 다시 짜겠다고 덤비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를 냉각시켜 서민의 고통이 커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