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정치인의 눈물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 3월 세 번째 집권을 한 뒤 군중집회에서 눈물을 보였다. 정보기관 출신의 냉정함에 야성미를 뽐내온 그가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그런 남자도 우냐”는 반응이 나왔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강행군인 선거 일정 속에 “머리 손질은 누가 도와주냐”는 질문을 받자 “쉽지 않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힐러리 캠프는 미국판 철의 여인이 그토록 바라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줬다고 반겼다. 정치인이 우는 것은 아기가 관심을 받기 위해 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눈물 정치’의 덕을 본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3위에 머물고 당 소속 의원이 이탈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문성근의 지지 연설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 모습이 TV 광고로 제작돼 그의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박근혜 후보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핵과 ‘차떼기당’ 역풍에 시달릴 때 천막당사 출범 소감을 밝히는 눈물의 TV 연설로 예상외 선전을 이끌었다.

▷정치인의 눈물도 흔해지면 식상한 법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울었다. 지난달 21일 쌍용차 해고 근로자 가족들을 만나 사연을 듣고 울 때만 해도 ‘감성적인 후보’라는 느낌을 줬는데 최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는 소식에는 차라리 ‘감상적인 후보’라는 인상이 든다. 남자도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나와 쉽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중년 남성이라면 굳이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남이 보는 데서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을까 조심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영결식장에서 추모 연설 도중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바다에 부하를 수장한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참담한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도 위엄을 보이지 못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았다. 힐러리 장관은 눈물 덕분에 지지율을 일시 만회했지만 “대통령에 오를 만큼 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줘 결국 패했다. 존 베이너 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고하다 자주 울어 울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치인의 눈물이 꼭 득이 된다고 할 수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정치인#눈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