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거요. 맥거핀(macguffin)입니다. 스코틀랜드 고(高)지대에서 사자를 잡을 때 쓰는 장치죠.” 스코틀랜드행 열차에 마주 앉은 두 남자는 긴 기차여행 중 자연스럽게 말을 섞게 됐다. 선반에 포장된 채 올려진 상대편의 짐에 눈길이 간 한쪽 남자가 “저 꾸러미는 뭐냐”고 묻자 반대편 남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질문을 던진 남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상한 일이네요. 스코틀랜드 고지대에는 사자가 없는데요.” 짐주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그래요? 그럼 맥거핀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군요.”
사이코, 새 등 수많은 걸작 스릴러 영화를 제작해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로 불리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자기 작품에 수시로 등장하는 영화적 장치 ‘맥거핀’을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에게 설명하면서 한 얘기다. 히치콕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속의 조지 캐플런이란 사람이 대표적인 맥거핀으로 꼽힌다. 그는 초반에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쥔 인물로 거론돼 영화 전체에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결국 무의미한 가상의 존재일 뿐이다.
올해 1월 말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를 4·11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놨다. 같은 시기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새 정강·정책 초안에 ‘경제민주화 실현’이란 표현을 넣겠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경제민주화’는 선거 정국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맥거핀일 뿐이었다. 몇몇 사람이 요란하게 떠들 뿐 경제를 깊이 공부한 학자, 경제 현실에 정통한 경제 관료들은 경제민주화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숱한 선거를 겪어 온 정치권과 경제계도 선거 때마다 나오는 재벌 개혁 구호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치적 동기로 시작된 ‘대기업 때리기’가 어떤 식으로 끝나는지 한국사회가 경험한 게 오래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벌개혁을 공약하고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정권을 잡자마자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세우고 기업지배구조 투명화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중반기를 거치며 성장률 하락 등 경제활력 저하가 분명해지자 출자총액제한제도 규제비율을 대폭 완화하는 등 대기업 때리기를 중단했다.
대선후보들이 매번 선거 때 대기업집단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는 데에는 ‘정치공학적’ 동기가 작용한다. 시기 질투의 대상인 재벌을 공격하는 건 표를 얻는 데 즉효약이다. 또 재벌은 지킬 게 많아서 웬만한 공격에 대응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가 재벌 때리기를 중단하고 기업규제 완화를 추진한 데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집권 후 경제를 직접 책임지다 보니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 당면과제의 열쇠를 대기업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하지만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지금 누구도 경제민주화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 어렵게 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등 유력 후보 3인이 모두 경제민주화란 칼로 결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자신이 참여했던 노무현 정부가 기업 규제 완화를 추진했던 이유는 까맣게 잊은 듯 “두 번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뒤질세라 안 후보는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재벌 문제”라고 밝혔다. 누가 더 대기업을 겁주느냐가 경쟁의 초점이다.
이미 대선후보들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먼저 꼬리를 내리는 순간 겁쟁이로 낙인찍히는 ‘치킨게임’의 형국이다. 실체가 없던 맥거핀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정국의 주연(主演)으로 자리를 굳혔다. 사자건, 기업경쟁력이건, 성장과 일자리건 뭘 하나 단단히 결딴내고야 끝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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