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프랭크 브루니]말싸움에 그친 美대선 토론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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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브루니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국의 정치문화가 격식을 갖추고 특정한 쟁점에 집중하는 것에 비추어 보면 이번 대선 TV 토론회는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으며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22일 플로리다 주 보카러턴에서의 3차 토론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토론을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덴버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에 대한 비난을 시작했다. 오바마는 롬니를 향해 “당신은 경제정책은 1920년대, 복지정책은 1950년대의 것을 거론하더니 외교에서는 1980년대의 정책을 도입하려고 하느냐”고 공격했다.

이에 롬니는 미소를 띠며 “나를 공격하는 것은 이번 토론회 주제가 아니다”며 받아넘겼다. 다른 어떤 대답보다도 현명한 대답일 수는 있으나 자세히 보면 그 답변은 더 이상했다. 마치 큰 파도가 몰려오는 위협적인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멀미약도 없이 서 있는 장면을 연상시키듯 군색한 것이었다.

오바마는 TV 시청자들에게 자신만이 군통수권자의 책임을 잘 이해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주지사만 지낸 롬니의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롬니는 오바마와의 토론에서 가끔 진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거렸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오바마가 알카에다를 뿌리뽑지 못했고 그들은 여전히 활동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바마가 중동을 ‘사죄 순방’하는 것으로 대통령직을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플로리다의 수많은 유대인 유권자를 겨냥한 것이었다.

외교 정책은 미 유권자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두 후보의 토론은 국제 문제에서 금방 국내 문제로 돌아왔다. 3차 토론회는 두 후보가 북아프리카 중동 등 국제 문제에서 국내 문제로 얼마나 자주 기민하게 주제를 돌리냐를 경연하는 자리처럼 보였다.

그들의 토론은 교육, 푸드스탬프(식량배급쿠폰), 오바마의 불균형 예산, 롬니의 구체적이지 못한 세금 계획 등으로 돌아왔다. 리비아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들을 수 없었다.

롬니는 예전처럼 공격적이지 못했다. 괴롭히는 역할을 오바마에게 양보한 것처럼 보였고, 오바마는 때로 지나치게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번 토론회에서 되뇌이던 ‘사실이 아니야’라는 오바마의 말버릇은 이번에는 ‘주제를 벗어났어’라는 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번 토론은 새로운 진실을 알려주었다. 후보들이 정직하게 말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물론 토론을 통해 대선의 열기를 고조시키고 많은 가정주부를 TV 앞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후보 토론이 끝난 후 언론이나 유권자들이 좀더 정교한 ‘팩트 체크’ 과정을 불가피하게 거쳐야 한다는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생각해볼 대목이다. 요즘 선거 캠페인에서는 사실상 부정직(dishonesty)이 오히려 선거 기술의 하나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은 ‘고도로 창조적인 말싸움의 산실’이기도 했다.

토론회를 통해 두 후보의 장단점과 사람 됨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긴 했다. 오바마는 고상함을 선호하고 정치의 피상적인 측면에 혐오감을 나타냈다. 롬니는 토론을 통해 설득력이 있음을 보여줬지만 토론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약한 면도 보여줬다.

말장난이 만연했던 지난번 토론회가 다시 떠올랐다. 사회자가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 토론회였다.

프랭크 브루니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 대선#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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