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중국에서 그리고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왕으로 법을 구하는 탁발승으로 몸을 바꾸어 태어나기도 하였다 하늘의 별을 보고 땅과 사람의 운명을 점친 적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눈먼 떠돌이 악사가 되어 온 땅이 바다고 사막인 이 세상을 홀로 지나가고 있으니
그가 지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흐름을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저 허공의 구름들처럼 말 없는 것들, 쓸쓸하게 잠든 것들을 열애할 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에서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거지였다가 왕이었다가 탁발승이었다가. 하늘의 별을 보고 운명을 점치는 사람이었다가 지금은 눈먼 떠돌이 악사.
‘여행자’는 스케일이 큰 시다. 전지적(全知的) 화자가, 공간만 옮겨 다니는 게 아니라 생을 거듭하며 한없이 광활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정말 환생이라는 게 있을까? 그것은 이 지친 떠돌이 악사의 환상이 아닐까? 눈멀어 그 자신은 볼 수 없는, 머리 위 허공 구름 같은.
어떤 생도 ‘저 허공의 구름들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테지만, 이 시 ‘여행자’는 그런 생에 덧없음이 아니라 가없음의 후광을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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