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들이 넘치고 부딪치고 충돌하며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지요? 권력의 정점을 뽑는 대통령선거는 전쟁인가 봅니다. 사실 야심은 나쁜 게 아니지요?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야심, 세상의 중심이 되어 보고 싶다는 야심은 때론 활력이고, 꿈이고,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 야심이 원력(願力·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의 힘)이 되지 못하고 사심(私心)으로 그치면 욕심에 눈멀고 귀먹어 나라가 보이지 않고 국민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에 대해서는 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가혹하기만 하고, 생존이 문제되는 곳에서 자주 그렇듯, 자신에 대해서는 그저 맹목이 됩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대통령이 되려 하시나요?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존중하기 위해 그 전쟁터에 나서셨습니까? 꼭 당신이어야 하나요? 투쟁의 목적이 뭔가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테니 나를 찍으라는 구걸의 논리 말고, 유비가 공명을 설득했듯 그렇게 한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큰 논리가 있나요?
삼국지를 보셨지요? 힘은 관우나 장비에게 뒤지고, 머리는 공명에게 뒤지는 유비가 그들의 주군인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비의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 때문에 모여든 게 아닙니다. 그들은 태평성대를 일궈 보겠다는 원력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유비조차도 그 원력의 구심점일 뿐입니다.
사실 그릇의 크고 작음으로 논한다면 유비보다는 조조가 아니겠습니까? 누가 조조만큼 똑똑하겠습니까? 그러나 똑소리 나는 조조에겐 조조 자신을 빼곤 영웅이 없습니다. 생각이랄 것도 없이 몸으로 행동하는 장비도, 다부진 관우도, 냉정하기까지 한 공명도, 올곧은 조자룡도 모두 유비의 사람이고 유비의 영웅입니다. 도대체 별 개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유비의 매력은 뭘까요?
유비는 가슴형 인간입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공명(共鳴)입니다. 느낄 줄 아는 존재인 거지요. 그는 공명을 자신의 머리로 느끼며 존중하고, 관우를, 장비를, 조자룡을 수족으로 느끼며 아낍니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거목처럼 중심이 있었던 공명이 왜 유비를 주군으로 섬겼을까요? 억압하지 않고 막지 않고 믿어주는 주군이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무대로 ‘너’의 춤을 추어도 좋다는 자신감의 춤입니다. 그 자신감 위에서 ‘너’를 완전히 신뢰하겠다는 결단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런 유비니 괜찮은 장수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두루 인재를 쓸 줄도 아는 노회한 조조지만 조조는 의심도 많습니다. 어떤 영웅이 의심 많은 주군을 섬기겠습니까? 어떤 영웅이 충성을 시험하는 주군과 함께 뜻을 세우고 기를 펴겠습니까? 평가하고 심판하는 군주는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조조는 승운이 없는 유비의 수하 영웅들을 부러워하며 훔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훔쳐간들 그들이 유비에게처럼 조조에게 충성할까요? 영웅들처럼 사람을 가리는 이들도 없는데.
명산이 명산인 건 산 좋고 물 좋아서가 아니라면서요? 명산이 명산인 건 현자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을 통일하지도 못했던 유비가 명산인 건 사심을 버릴 줄 알았던 사람들, 공명이 있고, 관우가 있고, 조자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심을 내려놓을 때 눈이 열려 사람이 보이고 길이 보이고 나라가 보입니다. 유비를 무대로 활개를 펴는 영웅들을 보면, 꿈같은 인생, 꿈인 줄 알고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당신 주위에는 누가 있나요? 당신 주위의 사람들이 당신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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