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에 구멍이 뚫렸다. 최전방 철책선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이어 정부중앙청사 경비까지 허술하게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 전반의 보안의식 해이가 도마에 올랐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2일 ‘구멍 난 안보망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군, 경찰 등 국가안보와 관련 있는 문제를 언론이 다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허위보고 등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어이없는 일들이 잇달아 발생해 짚어 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언론은 어떻게 접근했는지, 바람직한 보도 방향은 어떤 것인지 토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진강 위원장=지난달 17일부터 거의 한 달간 허술한 보안과 연관된 사건이 세 건 연속 터졌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기본 직분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국민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언론에서는 좀 더 심각하게,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쪽으로 보도한 게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주향 위원=가장 파장이 컸던 건 ‘노크귀순’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경계도 허술했고 보고도 허술했지만 ‘거짓보고’가 가장 심각합니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보고를 하고 대충 넘어가려는 자세가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 스캔들도 국민을 상대로 진실을 거짓말로 가린 것 때문에 문제가 커지지 않았습니까. 유치장 탈주범이 탈출 당시 경찰이 졸거나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만 근무 여건을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무 여건이 나빠서 개선 여지가 있는지 아니면 근무 태도가 문제인지 따져 봐야 합니다. 정부중앙청사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가짜 출입증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국가기강 해이 문제와 함께 왜 정부 시설에 방화를 하고 투신을 하려 했을까 하는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권순활 부국장=군, 경찰, 정부청사 등 국가 공권력을 상징하는 기관들의 허술한 보안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웬만한 민간 대기업보다 보안에 허점이 많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더 걱정되는 것은 근무기강 해이와 허위보고입니다. 전방부대의 경우 커버 영역이 넓다는 한계 등을 감안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철책이 뚫린다는 것은 국민으로서는 걱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허위보고 문제는 제대로 보고하면 문책을 당할까 봐 쉬쉬하면서 넘어가려는 풍토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인철 스탠더드에디터=공직사회도 문제가 발생하면 옷 벗기는 일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 때도 군 당국이 언론의 지적을 받은 이유는 사안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은 일선 병사부터 지휘관까지 보고체계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김동률 위원=냉정하게 볼 필요도 있습니다. 방호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면 시스템을 확충해야지, 당시 근무했던 사람을 탓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 중년 남성이 정부중앙청사를 찾아갔나 등의 후속보도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전방을 지키는 사병, 부사관, 초급 장교들을 우리가 탓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위원장=이번 사건들로 국민은 많이 놀랐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정부중앙청사를 방화하려 했지만 잘 진화되지 않았습니까. 전방부대 건도 아군 병사들의 직접적인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언론에서 이 사건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에 따라 국가적 손실이 더 커진 측면도 있습니다. 예전에 남파된 무장공비가 일부러 흔적을 남기고 가면 그 지역을 관리하는 장성이 다 잘리지 않았습니까. 정부청사 진화 당시 신속히 불을 끈 사람들이 누군지, 공무원들은 어떤 요령으로 진화하고, 대응 매뉴얼은 무엇인지를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언론이 관련자들을 나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중하게 사안의 원인부터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사회안전망을 위협하는 사건이 났을 때는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합니다. 관련 기관에서 내놓은 후속 대책을 언론이 제대로 검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탈옥 사건 같은 경우 근무자가 없었다는 점, 폐쇄회로(CC)TV를 제때 공개하지 않는 관행이 문제입니다. ‘노크귀순’ 사건에서는 허위보고 문책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합니다. 철책선이 뚫린 것과 관련한 국방부의 대책을 보면 최전방 일반소초(GOP) 병력을 10% 늘리겠다고 했는데 과연 이걸로 해결되겠는가, 이런 점을 검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발표된 후속 대책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전방 경비를 강화한다면서 군 병력과 복무기간을 줄이겠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지요.
권 부국장=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젊은이들의 표심을 겨냥해 정치권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 같은 안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데 이런 공약의 현실 적합성을 철저히 따져 봐야 합니다. 전방의 안보를 제대로 챙기려면 전문성을 갖춘 일정 수준 이상의 병력이 필요한데 병력은 줄어들고, 그나마 뭔가 좀 알 때쯤 되면 제대하는 군 인력 구조를 더 부추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이 위원장=‘소 잃고 외양간 고치자’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해 대비책을 완벽히 세우자는 면에서 공감합니다. 논의 방향을 좀 바꿔 볼까요. ‘노크귀순’ ‘호출귀순’ 이런 용어를 누가 만들어 내고 누가 쓰는지 언론 용어 선택에 불만이 있습니다.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비아냥거릴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문제입니다. ‘구멍 난 안보’를 상징하는 용어로 오래 남을 것이기 때문에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용어를 선택할 때 언론이 더 신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 4년 전 귀순한 사람을 언론에서 왜 그렇게 영웅시할까도 의문입니다. 국가안보 측면에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언론의 용어 선택은 신중해야 하지만 ‘노크귀순’은 쉽고 짧게 전달할 수 있어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이런 일이 터졌다고 군 병력 감축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군 감축은 좀 더 큰 사안 아닙니까. 그보다는 시스템이나 제도 정비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문은 미래와 다음 세대를 조망하는 호흡이 긴 시리즈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 스탠더드에디터=이번 일련의 사건을 국가기강 해이로 얘기를 하는데, 특히 대선 국면을 맞아 정파성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국가기강 문제를 다루는 데 언론들이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권 부국장=군과 경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말 중요한 조직이고 고생을 많이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잘못한 부분은 비판하더라도 사기를 너무 떨어뜨리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군과 경찰에 대해서는 언론이 질책과 격려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위원장=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제2의 잘못이 발생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처하자는 것입니다. 문책과 처벌 위주로 갈 것이 아니라 국가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군, 경찰 등 공직사회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끔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불을 끈 공무원들의 헌신적 자세 등은 당시에 언론이 짚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좌우 대립을 떠나서 국가안보나 사회보안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군이나 경찰 등 기본적 안보 인프라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이 위원장=기본을 안 지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인터넷상에서의 젊은층의 생각과 반응은 어떤가요?
김 스탠더드에디터=군과 경찰 등 국가기관을 이해하는 측면과 비판하는 측면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보고체계 미비와 허위보고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는 주장도 많이 쏟아지지만,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 위원장=쉬운 것 같으면서 토론하기 까다로운 주제였습니다.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기본을 충실히 지키면 사회 안보 시스템이 위협받는 일은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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