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는 영어로 차이나라고 한다. 유럽 왕실에 선물로 전달된 중국 도자기가 얼마나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싶다. 칠기는 저팬이라고 한다. 일본의 칠기가 서양으로 흘러들어가 고유명사가 됐다. 당시 유럽 사람들이 고려청자를 알았더라면 지금 도자기를 코리아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유려한 조형미, 가을하늘을 닮은 비색(翡色), 독특한 상감(象嵌)의 고려자기라면 그럴 자격이 충분하지만 한국은 도자기를 내수용으로만 만들어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송나라 태평노인이 지었다는 책 ‘수중금(袖中錦)’에는 ‘고려비색(高麗翡色)이 천하제일’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고려가 송나라를 모방해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송나라 청자를 제치고 고려청자가 천하제일이 되었다는 의미다. 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도기의 푸른빛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말한다’고 기록했다. 비색의 ‘비(翡)’는 원래 ‘물총새’인데 지금은 고려청자 색깔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고려·조선시대 자기 명품 전시회가 가을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천하제일 비색청자’전은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1989년 개최됐던 ‘고려청자명품 특별전’ 이후 23년 만에 열리는 고려청자 전시회다. 청자 완형만 350여 점이 출품된 전시회에는 박물관 소장품과 함께 간송미술관 및 개인소장품,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과 야마토문화관 소장 국보급 고려청자가 전시되고 있다. 어미 원숭이의 뺨을 쓰다듬고 있는 새끼 원숭이를 묘사한 청자모자원형연적(국보 270호)은 고려시대 미적 감수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과 함께 3대 사립 미술관으로 꼽히는 호림미술관에서는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전이 열리고 있다. 호림은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의 호다. 성보화학 회장인 윤 이사장은 간송 전형필 선생처럼 사재(私財)를 털어 문화재를 사들여 우리 문화재의 유출을 막았다. 그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국보급 유물과 희귀 소장품이 이번 전시회에 나왔다. 15세기 걸작품 분청사기박지연화어문편병(국보 179호)과 백자청화매죽문유개입호(국보 222호)는 아름다움이 ‘조선자기의 종결자’라 할 만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의 향연에 빠져볼 수 있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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