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최고 좋은’ 키 성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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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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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12세 소녀 사라는 키가 177cm다. 병원 검사 결과 어른이 되면 190cm까지 자랄 것으로 예측됐다. 또래보다 큰 키 때문에 놀림을 받는 사라는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무릎을 드릴로 뚫어 성장판을 막는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았다. 한데 수술 후에도 키는 180cm를 넘어 계속 자라고 있다. 미국에 사는 흑인소녀 리사의 나이는 16세, 신장은 199cm다. 아기자기한 성격을 가진 리사는 학교 농구선수에 발탁됐다. 신체적 조건에 맞춰 인생을 살아야 할지,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야할지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된 ‘꺽다리 소녀들’은 키가 185cm를 넘는 여성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여성의 정체성이 ‘큰 키’만으로 규정되는 삶은 녹록지 않다. 키 큰 여성은 거칠고 드셀 것이란 고정관념 때문에 짝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엘리베이터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신기한 구경거리나 되는 듯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무례한 시선도 불편하다. 그래서 자녀의 성장을 멈추려고 호르몬제를 투여하고 수술도 받게 하지만 효과는 별로다. 키 186cm의 에다 바우만폰 브뢴 감독은 자신의 딸에게 꺽다리 여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일러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큰 키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큰 키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하소연이 ‘가진 자의 투정’처럼 들릴지 모른다. 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키 크는 약과 관련된 허위 과장광고들이 기승을 부린다. 그제 공정거래위원회가 키 성장제와 관련해 소비자 피해주의보를 내렸다. 대부분 키 성장제는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이라고 한다. 큰 키든 작은 키든 차별하는 사회적 시선이 더 문제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한국인 남녀 평균키는 각각 174cm, 160.5cm다. 북한은 여기서 한참 더 내려간다. 같은 DNA를 물려받았더라도 후천적 영양이 중요하다. 인간의 몸에 표준이나 평균 사이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키 큰 아이가 소원이라면, 무리한 요법을 하느라 돈 쓰고 건강까지 해치지 말고 푹 자도록 하는 게 상책이다. 키는 성장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성장호르몬은 잠잘 때, 주로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많이 분비된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잘 자란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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