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안철수 간의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방식으로 10년 전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간에 이뤄졌던 여론조사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전례를 따르는 게 손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여론조사가 과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압축하는 방식으로 타당한지 다시 한 번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노무현 정몽준 후보는 0.1%포인트라도 여론조사에서 이긴 사람을 승자로 한다는 룰에 따라 단일화했다. 그리고 조사 대상에서는 이회창 후보 지지자를 제외했으며 질문은 ‘단일 후보로 노-정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것이었다. 요컨대 ‘단일화 후보 선호도’를 물은 것이다. 지금 이 방식을 적용한다면 10월 말 현재까지의 추세로는 문 후보가 안 후보보다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야권이 후보 단일화를 하려는 목적은 정권 교체에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에서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가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박 후보와의 경쟁에서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 ‘본선 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로 한다면 현재 추세로는 안 후보가 문 후보보다 앞선다. 어떤 여론조사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2013∼2018년 5년간 국가 운명을 책임질 18대 대통령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기껏해야 몇천 명 샘플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대한민국의 운명까지 맡긴다는 게 선거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여론조사에서 0.1%포인트라도 앞선 사람을 승자로 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컨대 2000명 샘플을 조사할 경우 통계학상 신뢰수준이 95%이고 표본오차는 대체로 ±2.5%로 나온다. 오차범위가 ±2.5%란 것은 5%포인트까지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A 후보가 52.5%, B 후보가 47.5%로 나온다면 두 사람 간의 격차는 5%포인트인데 이럴 경우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 통계학적 결론이다. 따라서 여론조사에서 0.1%포인트를 이겨도 승자라는 판단은 선거민주주의 관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여론의 오독(誤讀)이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추세라면 문-안 두 후보의 단일화를 여론조사에 부칠 경우 오차범위 내 차이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근거로 승패를 가를 경우 제비뽑기나 다름없는 ‘민의 참칭(僭稱)’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든 단일화 방식을 이번에 다시 끄집어내 쓴다면 정치 쇄신과 거리가 먼 낡은 정치로의 회귀다. 10년 전에도 국내 유수의 여론조사기관들은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 단일화는 옳지 않다고 해서 조사 참여를 거부해 상대적으로 군소회사들이 조사를 떠맡았다. 만약 민주통합당이 이 방식에 동의한다면 이는 이른바 ‘국민경선 방식’으로 100만 명이 참여해 실시한 당내 후보 경선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초적으로 민주당이 자신들 손으로 확정한 대선후보를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한다는 것은 정당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자기부정(否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