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CBS 라디오에 나간 문 이사장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유재석 이수근 이승기 박명수 이경규 같은 방송인들 중에서 비서실장을 딱 한 명만 고르라면 누굴 선택하겠느냐?”
문 이사장의 대답. “다들 좋은 분이고 좋아하는데 특히 유재석 씨를 고르겠다. 정말 (방송) 잘하시고 편한 것 같다.” 이어진 질문. “박명수는 어떠냐?” 그래도 문 이사장은 “한 분만 선택하는 게 아쉽다”며 유재석을 고집했다.
알다시피 유재석은 TV 예능프로에서 ‘1인자’로 통한다. ‘노무현의 그림자’ ‘노 정권의 2인자’인 문 이사장이 ‘1인자’ 유재석을 자신의 비서실장 감으로 꼽은 데 눈길이 갔다. 그러면서 예능프로에서 ‘2인자’ 캐릭터인 박명수는 ‘NO’했다.
1인자 유재석 낙점한 2인자 문재인
당시 문 이사장이 박명수가 2인자 캐릭터라는 걸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신도 2인자 이미지에 물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명실상부 제1야당의 대선후보가 된 그가 이제는 2인자 콤플렉스를 벗어던졌는지 궁금하다.
TV 예능에서 유재석이 1인자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박명수를 명실상부 2인자로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다. 2인자는 박명수가 미는 캐릭터일 뿐이다. 유재석과 박명수는 각각 1인자와 2인자로 통하지만 예능권력의 차이는 엄청나다. 예능에서도 쉽게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이거늘 대선이 채 50일도 남지 않은 요즘, 대통령 권력을 나눠주겠다고 야단이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 인사권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권력분점의 일환으로 ‘책임총리제’를 주장해온 문 후보는 지난달 30일 “부통령제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야권 단일화 이슈에 밀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은 맞불카드로 분권형 개헌을 만지작거린다. 앞서 박 후보는 21일 “총리실이 내치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며 대통령 분권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빅3’ 후보가 모두 대통령 권력분산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비판여론을 의식한 결과다. 하지만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도 사석에서 ‘책임총리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이 다원화 분권화라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총리가 내치의 중심이 되는 책임총리제는 실제로 운영하려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총리가 내치를 총괄하는 책임총리제의 나라다. 세 번에 걸쳐 좌·우파 대통령-총리가 공존하는 ‘동거(同居) 정부’의 폐해를 겪은 프랑스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7년)과 총리(5년)의 임기를 5년으로 같게 만들었다. 대선 총선을 같은 해에 실시해 동거정부 출현을 방지한 것이다.
프랑스의 권력분점 실패 돌아봐야
그래서 문제가 해결됐을까. 개헌 이후 처음으로 같은 해 실시된 2002년 대선과 총선에선 모두 우파가 승리했다. 하지만 연임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차기를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 사이에 전례 없는 ‘우-우 권력갈등’이 빚어졌다. 프랑스 언론은 ‘4번째 동거 정부’라고 비꼬았다.
‘대통령의 권력분산’ ‘공동 정부’…. 아름다운 얘기다. 하지만 1인자와 2인자가 권력투쟁을 벌이면 국정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 같은 단임제 국가에선 ‘차기 1인자’가 될지 모를 2인자에게 권력이 블랙홀처럼 빨려들 수도 있다. 지금처럼 눈앞의 표에 급급해 대한민국의 헌법체계와 국가시스템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백년대계가 걸린 권력구조 공약을 마구 던진다면, 우리의 미래를 집어던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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