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업계 1등인 농심의 주력 상품 ‘너구리’ 수프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희성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평생 먹어도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고 밝혔지만 식약청은 제품 자진회수 조치를 내려 논란을 키웠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섭취하는 벤조피렌 양이 라면 수프 한 봉지의 1만6000배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식약청은 왜 이런 비과학적 판단을 내렸을까.
아마도 지난 한 해 국민 1인당 72개씩, 모두 36억 개를 소비할 정도로 라면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탓일 게다. 라면에는 겉봉은 물론이고 수프 포장지에도 어떤 재료를 얼마나 썼는지 표시하고 있다.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이나 ‘난각칼슘’ ‘구아검’ 등 세세하게 첨가물이 표기돼 있다. 까다로워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식품위생법에서 세밀하게 첨가물 종류와 함량을 공개하도록 한 덕분이다.
소비자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은 이 규정을 적용받지만 유독 빠져나간 게 있으니 바로 소주로 대표되는 술이다. 한국에선 소주, 그중에서도 알코올 농도 99% 수준의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라면만큼이나 대세다. 지난해 모든 국민이 평균 64병을 마셨을 정도다. 19세 이상 성인으로 폭을 좁히면 평균 84병으로 늘어난다.
라면 수프에 눈곱만 한 것이라도 뭐가 들어갔는지는 언론의 관심사고 국정감사에서도 공방이 이어진다. 하지만 소주는 들이켜는 대상일 뿐 물 이외에 뭘 탔는지는 이목을 끌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드는지 궁금해 뒷면을 살펴봤다.
‘원료-주정, 증류식소주 0.1%’ 이게 전부다. 이보다 자세히 표시한 소주는 주정의 국산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로 표기했을 뿐이다. 라면에서 수십 가지 양념맛 원료를 깨알같이 표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친절 그 자체다.
식약청이 올해부터 사카린을 유해물질에서 제외해 ‘소주에 다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사카린 대신 쓰였던 스테비오사이드 역시 종종 유해성 주장에 휘말리지만 뚜렷한 답이 없다. 제조사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소주는 적당히 쓴맛과 약간의 달달함, 청량한 목넘김, 그리고 오묘한 향이 잘 버무려져 있다. 이렇게 기묘한 맛을 물과 알코올만으로 만들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의문점은 법에서 출발한다. 식품은 식품위생법 규정을 적용받지만 소주는 주세법을 따른다. 이 법 44조의 2는 주류에 대해 ‘원료의 명칭 및 함량, 주된 원료가 생산된 국가나 지역, 유통기한, 면세여부’ 등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식품위생법과 달리 향이나 단맛 혹은 변질을 막는 각종 ‘첨가물’은 표시 대상이 아니다.
2010년 12월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첨가물도 공개 대상에 포함하고 식약청이 주류에 유해물질이 포함됐는지 검사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사이 국민은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지도 못하고 소주를 매년 수십 병씩 마시고 있다.
제조업체가 스스로 나설 리 없으니 정부가 나서야 하지만 술 시장에서 지난해 세금을 2조3398억 원이나 거둬선지 소주 첨가물엔 무관심하다. 역시 건강 챙기기는 개인의 몫인가 보다. 연말이 다가오니 소주잔 들 기회가 늘 것 같다. 그 전에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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