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땀 흘리고 돌아와 바라보는 식탁 위 밥 한 그릇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한 신발, 올이 닳은 양말
불빛 아래 보이는 저 거룩한 것들 한 종지의 간장, 한 접시의 시금치 무침 한 컵의 물, 한 대접의 콩나물 국 부딪치면 소리내는 한 쟁반의 멸치볶음
저것들이 내 하루를 이끌고 있다 내일도 저것들이 부젓가락 같은 내 몸을 이끌어갈 것이다
꽃나무처럼 몸 전체가 꽃이 될 수 없어 불꽃처럼 온 몸이 불이 될 수 없어 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 없는 이 한스러움
풀씨처럼 작은 귀로 세상을 들으려고 상처를 달래며 길 위에 서는 날도 밥상 위의 한 잎 배추잎보다 거룩한 것 없어
긁히고 터진 손발을 달래며 오늘도 돌아와 마주 앉은 식탁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이 세상을 눈부시게 할 수 있는가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추운 생을 데울 수 있는가
어느새 神이 되어버린 식탁 위의 밥 한 그릇
맞다. ‘뜨신 밥’ 한 사발에 수북이 담긴 한톨 한톨 쌀알은 다 눈물겹고 값진 땀방울이다. 지상의 한 끼를 노래하는 시는 그래서 밥벌이의 고단함에 닻을 내리고 있다. 식솔들을 위해 양말의 올이 다 풀릴 때까지 발품 들여 노동한 대가로 얻은 식탁 위의 밥 한 그릇. 세상의 밥은 참 귀하고 거룩하다.
살아가는 일이 밥에서 출발하므로 밥과 삶은 하나로 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먹는다는 원초의 본능을 공유하는 사람들, 식구(食口)란 말은 그래서 가족보다 더 따스하게 들린다. 혈육이 아니라도 우리는 늘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게 된다. “밥 먹었어요?”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한국식 인사말도 서로 주고받는다.
세상에 먹고사는 일보다 소중한 일이 있을까. 화가 정경심 씨가 세상만사 희로애락을 밥상을 화두로 풀어낸 이유다. “먹고사는 일에 우주의 질서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 화가의 그림은 편하고 재미있다. 시금치나물과 생선반찬이 놓인 밥상에서 꽃나무가 활짝 피어나고 보글보글 된장뚝배기에 파란 풍선이 두둥실 떠있다. 화려한 진수성찬에 격식 차린 한정식이 아니라 따사로운 기쁨과 위로를 주는 ‘엄마표 밥상’이 떠오른다. 어미 가슴에 주렁주렁 매달린 새끼 돼지들처럼 밥상머리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던 그 시절. 우리가 나눈 것은 그저 음식이 아닌, 또 하루를 버틸 기운이었을 터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가 남의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이란 말이 있다. 이 한 주도 남의 밥상 기웃거리지 않고 정직한 노동으로 바보처럼 원칙을 지키며 지상의 한 끼를 길어 올린 모든 이와 꽃 피는 밥상을 나누고 싶다. 11월 첫 토요일의 아침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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