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난달 커버스토리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다뤘다. 뉴스위크는 “대선후보들은 타협과 흥정의 달인(達人)인 링컨에게 배워야 한다”며 “그는 미국이 배출한 가장 약삭빠른 직업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고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링컨은 정치게임과 공작의 대가였으며, 그의 업적도 능수능란한 정치 술수의 결과물이었다. 노예제를 폐지하는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행정부 요직을 주겠다’며 정적을 매수하거나 노예 소유주인 하원의원을 몰래 불러 특혜를 약속했다.
▷새디어스 스티븐스 전 하원의원은 이를 두고 “19세기 가장 위대한 법안은 미국에서 가장 순수한 남자가 거들어준 부패로 통과됐다”고 촌평했다. 사후에 링컨의 이미지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이상주의자이자 투사로 채색됐다. 올여름 한국에서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에서는 링컨이 대통령 신분으로 직접 도끼를 들고 노예 소유주와 싸운다. 이 영화에서 노예 소유주와 남군 일부는 흡혈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 흡혈귀이고, 흥정과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다.
▷이 영화에 나오는 흡혈귀는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고통과 감정을 느낀다. 그렇기에 링컨의 도끼에 흡혈귀들이 죽음을 맞거나 영화 끝부분에서 북군이 흡혈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 모습은 끔찍한 학살로 보이기도 한다. 여름 시즌용 액션 영화에는 고결한 영웅과 거침없이 죽여도 되는 절대 악(惡)이 필요하고, 이 영화에선 그걸 각각 링컨과 남군이 맡은 셈이다. 노예를 해방시키겠다며 감정과 지적 능력을 지닌 존재에게 망설임 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영화 속 링컨은 흡혈귀로부터 “신념의 노예”라는 조롱을 듣는다.
▷대선 판이 벌어진 한국에서도 ‘신념의 노예’를 찾아볼 수 있다. 공당의 대선후보가 후보 수락연설에서 다른 당을 ‘거악(巨惡)’으로 규정하고 “한국 정치에서 몰아내자”고 한다. 인터넷 공간에 올라오는 글에는 대화나 타협의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도끼로 무찔러야 할 흡혈귀로 여기는 듯하다. 신념은 필요하지만 그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돼야 한다. 성찰과 반성을 허락하지 않는 신념은 아집(我執)일 따름이다. 역사에서 커다란 비극은 대개 신념이 부족한 데서 온 게 아니라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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