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국 헌법학계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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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부정하는 ‘위헌정당’ 해산 안 하는 것은 문제”

김철수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한 예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들었다. 그는 “강성 노조가 소득에 집착해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기보다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노동시간을 줄여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철수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한 예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들었다. 그는 “강성 노조가 소득에 집착해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기보다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노동시간을 줄여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헌법 개정을 논의하기보다 지금 있는 헌법이라도 위정자들이 잘 지켜주면 바람직하겠습니다. 현재 헌법은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하지 않았으나 실행을 잘못해 권력 독점과 부패가 생기는 것입니다.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도 헌법 준수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론이 다시 나오고 있다. 올해 내내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관련 헌법 조항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모두 국가의 뼈대인 헌법을 제대로 알아야 접근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고시를 준비하거나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헌법 전문을 읽고 꼼꼼히 공부해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국 헌법학계의 태두’로 불리는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겸 명지대 법학과 석좌교수(79)가 최근 출간한 저서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소명출판)은 그래서 반갑다. 팔순을 맞아 지난 60년간 헌법학자로서 써온 논문, 칼럼, 에세이 등을 1100쪽 넘게 모은 방대한 책이다. 중학생 때인 1948년 혼란한 정국 속에서 제헌헌법의 탄생을 지켜보며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래 한국 헌법학의 토대를 닦고 지금까지 헌법 연구에 몰두해온 김 교수의 굵직한 조언들이 담겼다. 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헌법과 달리 대통령 권한 과도하게 행사

―저서의 제목이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이다. 우리나라 헌법정치의 ‘이상’은 무엇이며 ‘현실’은 과연 어떤가.

“헌법의 이상은 어디까지나 입헌주의, 즉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을 이루는 것이 포함된다. 1987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현재 헌법은 거의 이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집행이 잘못되고 있다. 헌법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력을 분산하도록 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의 권한이 과도하게 행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형식적으로는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멋대로 국무위원을 임명하지 않는가. 또 항시 감사를 할 수 있는 미국 독일과 달리 우리는 국정감사 기간이 연 20일에 불과해 정부에 대한 국회의 감시와 비판이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내용으로 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데 이어 최근에도 대선후보들 사이에 개헌 언급이 나오고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인데, 위정자들이 지금 있는 헌법이라도 잘 지킨다면 대통령의 권력 독점과 부패는 자연히 줄어든다. 나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가 중심이 되는 의원내각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 바로 의원내각제로 바꾸기는 어려우며, 제2공화국 때 도입된 의원내각제는 대통령과 총리가 대립할 경우 중재할 사람이 없어 문제였다. 현재로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중간단계로서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외치(外治)를, 국회 다수당에서 나온 총리가 내치(內治)를 맡아 권한을 나누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가깝다. 요즘 4년 중임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중임제가 도입되면 대통령이 8년 집권만 하고 끝내겠는가.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처럼 장기집권을 위한 시도가 생기면 곤란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헌법 가르쳐야

―논란이 된 헌법 제119조의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나.(헌법 제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119조 1항에 보장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어떤 경우에 제한할 수 있느냐가 2항에 나와 있다. 나는 2항에 나온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좁은 의미로 해석해 독일식 경영민주화라고 본다. 독일에는 회사의 주요 사안을 결정할 때 반드시 노동자와 기업가 측이 반수씩 모이는 경영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공동결정법이라는 게 있다. 소득분배나 소비자보호,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리 등은 헌법의 다른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으니 2항을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국민들이 헌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헌법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

“조선시대부터 백성은 주권자가 아닌 피치자(被治者)로 간주됐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황의 권위가 컸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우리에겐 민주적 입헌정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있다. 헌법은 국민의 합의로 만든 최고의 법전이며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한 것인 만큼 국민이 헌법을 알고 지켜야 나라가 잘 돌아간다. 그런데 국민이 헌법의 의미를 잘 모르니 국가권력에 대한 감독이 소홀해진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거나 애국가를 안 부르고 북한을 찬양하는 등 헌법을 부정하는 정당이 있는데도 정부가 헌법에 규정된 위헌정당해산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헌법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보나.

“위정자들이 헌법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국민이 헌법을 배워 권리 행사에 적극 나서면 위정자들이 불편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헌법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모든 종류의 공무원 시험에 헌법 과목을 넣어야 한다. 법원이나 경찰서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당했다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헌법을 알면 스스로 올바르게 항의할 수 있다.”

유신헌법 반대 이유 교수재임용制 생겨

―유신헌법 공포 당시 헌법학자로서 혹독한 고초를 겪었을 텐데….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개헌안이 공고되자 정부는 공법학자들을 동원해 유신 지지 발언과 유신 헌법 홍보를 요구했다. 당시 정부가 나더러 방송에 출연하라며 TBC 방송국 앞에 데려다놨는데 내가 달아나서 밉보였다. 이듬해 1월 ‘헌법학 개론’을 출간했는데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쓰는 등 비판적인 내용이 있었고, 다음 날 바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일주일간 잠도 안 재우고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 책을 수정하라며 협박을 했다. 수정 재판과 3판도 몰수당하고 4월이 되어서야 수정 4판부터 출간할 수 있었다. 책은 나왔지만 강의는 못하게 해서 1년간 미국과 독일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교수는 영구고용제였는데 이후 교수재임용제도가 생겼고 유신헌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나의 재임용 탈락이 논의됐다. 대학본부의 노력으로 교수직은 가까스로 유지했으나 유신헌법을 지지하는 새로운 교수가 채용됐고, 내 학교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에도 책을 낼 때마다 검열을 당했다. 유신헌법 선포 전까지 나는 제자들의 석사 논문을 지도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강하다’고 가르쳤는데, 정부에서 다시는 그런 학설이 못 나오도록 유신헌법을 선포했다는 말도 들었다.”

교화 불가능한 반인륜 범죄자 사형시켜야

―최근 법원이 여성을 납치 살해한 오원춘에 대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형을 내려 관대한 처벌이라는 논란이 나왔다. 사형제에 대한 의견은….

“양심범의 경우 격리해서 교육하면 된다. 하지만 교화가 불가능한 극악무도 반인륜적 범죄자의 경우 사회 안전보장을 위해 불가피하게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성폭행 죄로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석방된 뒤 재범하는 범죄자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는 지난 15년간 사형수들의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는데, 아무리 나쁘게 살아도 사형 집행을 안 한다면 누가 겁을 내겠는가. 재교육이 안 되는 사람까지 국가에서 돈을 들여가며 교도소에 수용할 필요는 없다.”

―서울대 법대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를 많이 배출했는데 기억에 남는 제자는 누군가.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로 내 제자들이 서울대 교수 임용에 불이익을 받은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양건 감사원장,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효전 전 동아대 법학부 교수, 고승덕 전 국회의원 등이다. 미안함을 전한다.”
● 김철수 교수는

김철수 교수는 1933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며 1956년 독일 유학길에 올라 1961년 뮌헨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1971년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서울대 법대 전임강사로 헌법학을 가르쳤고 이듬해 서울대 법대 교수로 부임했으며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한국공법학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장, 탐라대 총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명지대 법학과 석좌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헌법해석뿐 아니라 헌법철학, 헌법정책학 등으로 한국헌법학의 지평을 넓혔으며 입헌주의와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지난 40여 년간 법대생과 법학자의 필독서였던 ‘헌법학 개론’을 비롯해 ‘헌법질서론’ ‘헌법학’ ‘위헌법률심사제도론’ 등 20여 권의 책을 펴냈다. 1988년 헌법재판소의 탄생은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사법부의 독립과 함께 위헌법률 심사권 행사를 주장해 온 그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1990년 제자들과 함께 ‘한국헌법연구소’를 설립해 헌법에 대한 토론과 연구를 해 왔고 현재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집필을 계속해오고 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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