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화자가 그 늦가을 평원을 지나며 기러기떼 날아가는 하늘을 향해 가슴이 터져라 불렀을 듯도 한, 우리 가곡 한 구절을 뇌어본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십 리가 약 사 킬로미터니까, 구만 리면 삼만육천 킬로미터. 공책에 끼적끼적 실없는 셈을 해본다. 아득한 그 하늘에 화자 가슴 깊이 묻혀 있던, 차마 발설할 수 없는, 발설해서는 안 되는, ‘도무지 말이 되어 나올 수 없는 것’이 맵싸하게 스미어 있다. 기러기가 날아온 거리만큼이나 아득한 저편의 때를 놓친 마음들. 이제는 소식을 알 수 없고, 소식을 전해서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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