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수능 母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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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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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많이 먹어.” 아침식사로 미역국을 준비한 어머니가 다정하게 건네는 말에 고3 아들이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엄마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나 모의고사잖아.” 시험 보는 날 무슨 미역국이냐고 아버지까지 거들자 어머니는 왠지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하교 후 아들은 여동생이 보낸 문자를 확인한 순간 당황한다. “오빠, 엄마 생일인 거 몰랐어?” 국내 제약회사가 내보내는 TV 광고다. 공감이 갔다.

▷어제 조계사에 우연히 들렀다가 대웅전 안을 빼곡하게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건물 바깥에서 절하는 어머니들과 마주쳤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정에 맞춰 7월 20일부터 시작한 111일 기도가 끝나는 날이었다. 어머니들은 딸 아들의 사진이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앞에 두고 기원을 드린다. 경내 현수막에는 ‘자녀를 위한 행복한 동행’이란 문구가 들어 있다. 전국 곳곳의 교회와 성당에서도 수험생 어머니들의 간절한 기도가 강물처럼 흘러넘쳤다. 해마다 이맘때면 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애끓는 모정(母情)’이다.

▷입시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치르는 전쟁이다. 한 수험생 엄마는 “자식보다 부모의 고생이 더 크고 힘들다. 비교하자면 부모가 80이고 자식이 20”이라고 말한다. 요즘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비결이 ‘할아버지의 경제력’ ‘어머니의 정보력’과 함께 ‘아버지의 무관심’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으나 아버지의 몫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황의 제자 김택룡(1547∼1627)은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아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바친 과정을 일기로 남겼다. 그는 과거시험에 붙은 사람이 썼던 ‘행운의 붓’을 빌리기 위해 퇴계의 손자에게 간곡한 편지를 보냈고 나라에서 정한 규격에 맞춰 답안 용지까지 손수 챙겼다.

▷오늘 수능이 전국 1191개 시험장에서 치러진다. 올해 수능에는 66만8500여 명이 응시한다. 자식을 집안의 상전으로 모셔가며 묵묵히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어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일 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동안 아이가 노력한 만큼 실수 없이 시험을 잘 치르게 해달라는 것 아닐까. 대학에 들어간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너무 쉽게 잊는다. 대학 합격, 그 절반은 뒷바라지한 엄마의 몫이란 것을. 고3 어머니들도 이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를.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수능#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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