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인사이드/김지영]당신도 울고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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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잘했다 서영아. 저리 잘난 놈을 못난 애비 때문에 놓치면 안 되지. 잘했어.” 결혼식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버지는 그날도 하객 대행을 하다가 유학 갔다는 딸이 신부로 입장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본다. 딸은 무능한 아버지가 창피해서 고아로 행세하며, 아버지 몰래 ‘엄친아’와의 결혼을 감행한 것이다.

가족에게 빚만 지우다 아내까지 세상을 떠나게 한 아버지.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을 당일에야 우연히 알고 한강변에 앉아 “잘했다 서영아”라며 독백을 하고 딸의 신혼집 주변을 맴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부모 마음이 이런 거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라는 소감들이 올라왔다. KBS2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절절한 부정(父情)을 키워드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4일 시청률은 32.9%로 주말극 1위를 달리고 있다.

수목 드라마 시청률 1위 KBS2 ‘착한 남자’도 눈물 드라마다. 자신을 버린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재벌가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남자, 그리고 남자가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여자. 남자는 뇌손상으로 죽어 가면서도 새롭게 얻은 사랑을 조금 더 누리고 싶다며 수술을 거절한다. 역시 시청자 게시판에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다”라는 소감이 올라온다.

7일 시작한 MBC 수목극 ‘보고 싶다’도 ‘정통 멜로’를 표방하면서 눈물 가득한 이별 장면들을 예고편으로 선보였다. 요즘 지상파를 달구는 드라마 코드는 한마디로 ‘눈물’이다. 불륜, 치정 같은 막장 설정이나 코믹한 일상다반사를 다룬 드라마가 대부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1000만 관객이 본 ‘광해, 왕이 된 남자’ 역시 관객을 감동시킨 중요한 요소가 ‘눈물 코드’였다. 통곡과 울음바다가 영화 전체에 흐른다. 누리꾼들이 손꼽는 명장면은 군주(실은 왕 대역을 하는 광대)의 인간적인 매력에 감동받은 나인 사월이가 왕을 대신해 독이 든 음식을 삼키는 부분이다. 피를 토하는 사월이를 안고 어의에게 달려간 왕이 살려 내라며 통곡할 때,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왕의 얼굴이 화면에서 커다랗게 클로즈업될 때 객석 곳곳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난주 개봉해 7일 만에 관객 150만 명을 돌파한 한국영화 ‘늑대 소년’도 누선(淚腺)을 자극한다. ‘늑대 인간’은 그간 사회화의 중요성을 증명하거나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로 쓰였지만, 이 영화는 ‘순정 멜로’다. 영화의 절정은 늑대 소년과 소녀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장면. 소녀와 소년이 바라보기만 하면서 이별 직전 눈물을 흘리는 클라이맥스는 관객의 눈물을 끌어 낸다.

대중문화에 흐르는 눈물 코드를 보면 당장 떠오르는 단어가 ‘신파’ ‘최루’ ‘멜로’ 같은 것들이다. 주인공들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인정비화(人情悲話)’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은 주로 ‘아줌마’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눈물 코드가 남성으로, 청년층으로 확장되고 있다”(한혜원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중년 남성들의 감정 이입을 끌어 내고 있으며 영화 ‘광해’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눈물로 화제가 됐다. 영화 ‘늑대 소년’과 드라마 ‘착한 남자’의 주 시청자층은 20, 30대 젊은 여성이다.

‘쿨’이 대세라는데 갑자기 웬 눈물바람인가? 울고 싶은 데 울 수는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 결국 주저앉아 눈물 쏟으며 한풀이를 하고 싶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 아닐까.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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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드라마#영화#눈물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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