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단일화 7개항 합의문’을 발표한 이후 두 진영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연대가 필요하다’는 대목을 두고 문 후보 측 일각에서 “신당 창당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 후보가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수용한 것을 두고는 ‘안철수 양보론’과 연관지은 관측도 있다. 그러자 안 후보 측이 발끈해 문 후보 쪽에 불쾌감을 표시했고, 문 후보 측은 오해라며 해명하기에 바빴다. 합의문 내용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데 따른 소동이다.
‘국민연대’라는 표현은 단일화 전이나 후, 또는 대선 후에 ‘두 지지 세력+α’로 신당을 창당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단일화 과정에서 양측의 지지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연대를 강화한다는 의미라면 좀더 구체적으로 작명(作名)했어야 한다. ‘단일화 추진에 국민의 공감과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대목도 국민이 공감해야 단일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이 동의하는 방식으로 단일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문 후보는 어제 새정치공동선언을 위한 협의가 잘되기를 바란다면서 영어 격언을 인용해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고 말했다. 대강을 합의해 놓고도 세부로 들어가면 꼭 일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안 후보는 출마 선언 이전에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기보다는 매사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 ‘국민에게 물어보겠다’는 식으로 말한다. ‘새 정치’와 ‘정치 혁신’을 말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안철수표 새 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가부(可否)를 말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피해간다. 이 표도 잡고 저 표도 잡으려는 심산인지, 한꺼번에 말하기보다 하나씩 잘게 쪼개 극적 효과를 높이는 것이 선거전략상 유리하다고 여기는지 속내를 모를 일이다.
문 후보는 전북 전주에 가서는 경남 진주로 이전이 확정된 LH공사를 마치 되찾아줄 듯 “저의 일처럼 해결해 나가겠다”라고 했고, 진주에 가서는 “혁신도시 사업을 당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하고 더 발전시키겠다”고 모순된 말을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단문단답(短文短答)형이나 “제가 이미 말씀드린 대로”라는 식의 답변회피형 화법 때문에 종종 국민에게 갑갑증을 불러일으킨다.
정치인의 모호한 화법과 추상적 언어는 정치와 국정에 혼란을 초래하기 쉽다. 모호한 화법을 즐겨 쓰는 사람들의 심리는 멋있게 보이려고 하거나, 나중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콘텐츠 빈약을 가리기 위한 화법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느 경우든 국가지도자가 되려고 나선 대선후보로서는 당당하지 못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