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원유신]14년간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0일 03시 00분


원유신 서울 세화여고 교감
원유신 서울 세화여고 교감
1990년대 중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면서 수험생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언어 영역의 비문학(소설 시 제외) 지문 독해였다. 학생들은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볼 수 없었던 글에 낯설어했다.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수능뿐 아니라 논술고사도 준비해야 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효율적으로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답이 바로 신문이다. 비문학 지문을 빠르게 읽고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좋은 논술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재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신문은 여러 분야의 시사와 교양,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교재였다.

국어과 교사들이 신문 읽기의 필요성에 공감을 했고, 이 내용이 학교장에게 보고됐다. 결국 14년 전인 1998년부터 우리 학교에서는 아침 신문읽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침 시간에 입시 과목에 대한 방송수업을 하거나 보충수업 혹은 자율학습을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아침 신문읽기를 시도한 것은 주변의 학교와 학부모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 신문읽기를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리는 과정에서 저항도 많았다. 학생들에게 아침마다 신문을 가져오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 시간에 차라리 문제집을 풀거나 단어를 외우는 게 낫지 않으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신문을 가져오지 않고서 친구에게 몇 장 빌려 읽는 시늉만 하고, 교사의 눈을 피해 엎드려 자거나 밀린 숙제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국어와 사회과 선생님들이 모여 신문읽기 지도 매뉴얼을 개발하고 담임교사 연수를 통해 바른 신문읽기의 방식을 알리면서 학생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문을 제대로 읽히기 위해 신문 읽는 시간이 되면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이 가져온 신문의 제1면을 검사해 당일 발간물임을 확인했다. 또 책상에는 국어사전과 필기도구만 올려놓고 집중해서 읽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신문을 읽는 태도는 점점 고쳐졌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나왔다.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읽었는지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강압적으로 특정 기사를 오려 공책에 붙이게 하고 중심문 찾아 쓰기, 내용 요약하기, 생소한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 정리하기 등을 수행과제로 내줬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형식적으로 과제를 해온 탓에 효과가 높지 않았다.

신문 읽기에 자율성을 좀 더 부여하기로 했다. 칼럼과 사설을 논리적 글쓰기의 표본으로 삼아 이를 베껴 쓰는 등 따라 연습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흥미 있는 기사를 스스로 선택해 읽도록 했다. 생각하며 읽는 분위기를 권장함과 동시에 과제 해결의 부담을 없앤 것이다. 그러자 신문읽기의 효과를 체감하는 학생이 늘고 스스로 신문을 찾아 읽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2005년부터는 매일 아침 신문을 읽는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게 됐다.

이제 아침이면 많은 학생이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라도 더 찾아 읽으려고 바쁘게 신문지를 넘기고 관심 있는 기사에 밑줄을 치기도 한다. 또 시키지 않아도 수첩에 기사 내용을 요약, 정리하거나 기사를 오려 공책에 붙이기도 한다.

매일 아침 30분씩 규칙적으로 신문을 읽으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꾸준한 신문읽기를 통해 독해력이 향상되고 그 결과 학년이 올라갈수록 언어영역 평균 점수가 상승했다. 일부 학생은 신문읽기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논리력과 사고력이 향상된 것은 큰 수확이다. 14년간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혀보니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신문만큼 유용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원유신 서울 세화여고 교감
#신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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