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깜깜이 경선과 졸속 대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2일 03시 00분


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겨룰 야권 후보는 누구일까. 자칭 타칭 정치평론가들에게 물어봐도 답이 엇갈린다. 미국에서도 대선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정치평론가, 정치부기자, 정치학자가 아니라 통계 전문가다. 정치 현안에 대한 인간의 판단에는 진보 또는 보수의 이념적 편향(bias)이 끼어들기 쉽다. 현실 세계에서 100% 순도의 객관성으로 소란스러운 데이터를 분석해 신호를 찾아내고 깔끔한 서술을 만들어내기는 무척 어렵다.

야구 및 선거통계 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야구 승률을 계산하듯이 선거를 분석해 미국 대선 결과를 족집게처럼 맞혔다. 그는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의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해 성적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사람이다. 정치 쪽으로 영역을 확장한 것은 2008년 미국 대선부터. 2008년 선거에서는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의 승자를 맞혔고 이번 대선에선 한 주도 틀리지 않았다. 그는 웹사이트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경합하는 일리노이 주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밝혔다. 이 바람에 공화당 지지자들이 그의 예측에 대해 편향적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그의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은 컴퓨터로 과학적인 예측 모형을 개발해 데이터를 집어넣음으로써 진보나 보수의 관점이 끼어들 여지를 없앴기 때문이다.

단일화 승패 가를 4대 변수는?

여론조사는 과학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조사회사 선정, 표본설계, 조사방법, 데이터 입력 과정에서 얼마든지 왜곡과 조작이 가능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10년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말한다. 지금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쓰기 때문에 집에서 전화를 받을 경우 가족이 대신 받을 수도 있다. 2002년처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라고 응답한 사람을 배제하더라도 단일화 여론조사가 언제 진행될지 사전에 알려져 있어 역(逆)선택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렵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내에서 오락가락하면 로또나 제비뽑기로 야권 단일 후보를 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측 도구인 여론조사가 후보 결정 도구로 쓰이다 보면 이런 민의(民意)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의 시한(時限)으로 정한 후보 등록일(25, 26일)까지는 대선의 모든 이슈가 단일화에 빨려들어갈 분위기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대결할 후보가 그때 가서야 확정되기 때문에 이후 25일 남짓한 기간 두 후보가 토론을 벌이고 상호 검증을 하고 유권자들이 정책과 자질을 비교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깜깜이 경선이 졸속 대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선투표제를 만들거나 후보 등록 시한을 대선 4개월 전으로 못 박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5년마다 2, 3위 후보 간에 ‘단일화 빅 쇼’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선 안 후보가 대체로 앞섰지만 최근에는 문 후보가 올라오는 기류다. 10년 전 정몽준 후보 측의 여론조사 전략을 총괄했던 김행 씨(현 위키트리 부회장)는 “정 후보도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 우위였지만 정작 단일화 여론조사에선 못 이겼다”며 “이번에도 문재인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에 야권 지지자들이 경쟁력이 높은 후보를 선호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박 대(對) 안이면 안이 이기고, 박 대 문이면 박이 이길 것”이라며 안 후보의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새누리당이 중도와 무당파 유권자들을 파고들면서 야권 후보를 왼쪽으로 밀어붙이려면 문 후보와 상대하는 게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2주 후면 당선자 예측가능

단일화의 승패를 결정지을 4대 변수는 ①경선 및 여론조사의 방식 ②TV 토론 ③호남의 선택 ④새누리당의 검증이다. 단일화 여론조사 직전에 두 후보가 벌일 TV 토론은 부동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도 단일화 여론조사를 앞두고 한 차례 TV 토론이 허용됐다. 두세 차례 토론 기회를 주는 것은 박 후보에게 공평하지 않다. 호남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야권 지지자의 대종을 이루기 때문이다. 호남에 거주하는 유권자는 10.3%이지만 호남 출신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는 수도권 유권자의 20∼25%에 이른다. 새누리당이 야권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본선에서 맞붙으면 버거울 상대에게 검증 공세를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누가 만만한 상대일지 자신있게 찍기가 쉽지 않고 검증 작전이 정교하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대통령선거는 전국이 단일 선거구여서 어느 나라나 여론조사 예측의 정확도가 높다. 여러 차례 대선 사례를 보더라도 후보 구도가 확정되고 나서 후보 등록 시점의 여론조사가 그대로 대선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있는 시간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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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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