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덕환]탄소가 무슨 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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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4일 03시 00분


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저(低)탄소도 모자라서 이제는 탈(脫)탄소를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기후 변화, 식량 생산 감소, 물 부족, 환경 파괴 등의 심각한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석연료의 지나친 낭비를 억제해야 한다. 에너지와 자원의 무분별한 낭비가 우리 모두에게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부작용이 아니더라도 고갈 위기에 놓인 에너지와 자원의 무분별한 낭비와 비효율적 소비는 더이상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탄소를 현대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악(惡)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는 매우 걱정스럽다. 오늘날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가 탄소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탄소가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와 낭비를 부추긴 것도 아니다. 그동안 환경 문제를 소홀히 여겼던 우리의 실수를 엉뚱하게 탄소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비겁하다.

탈탄소를 향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태양광, 풍력, 조력, 바이오, 원자력 등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식도 바로잡아야 한다. 탄소를 쓰지 않는다고 무조건 친환경적 선(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재생에너지에 의한 환경 파괴,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 식량 생산과의 경쟁으로 촉발되는 윤리 문제도 화석연료에 못지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에너지 전달 수단에 불과한 수소가 친환경 청정에너지가 될 수도 없다.

물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도 찾아야 하고, 에너지와 자원의 무분별한 낭비도 줄여야 한다. 그런데 무작정 탄소를 거부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변화하는 기후는 우리 마음대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거대한 자연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기술만능주의적 착각이다. 연약한 존재인 우리에게 진짜 절박한 과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다. 탄소에 대한 공연한 거부감이 우리의 그런 노력에 독(毒)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탄소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의 형성과 생명 현상은 유별난 화학적 특성으로 무한한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탄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심지어 생명이 번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태양 에너지도 탄소를 촉매로 하는 핵융합 반응에서 생성된다. 결국 탈탄소는 우리 자신의 존재와 생존까지 부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탄소는 인류 문명의 핵심이기도 하다. 1만2000년 전에 시작된 인류 문명은 식물과 동물이 가지고 있는 탄소 유기물의 합성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였다. 인류 문명의 시대적 구분에 사용되는 청동이나 철과 같은 소재도 탄소로 구성된 식량, 섬유, 염료, 의약품, 목재, 종이의 확보가 전제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인류 문명을 꽃피워준 고분자와 미래의 소재로 개발되고 있는 첨단 나노 소재도 대부분 탄소의 화합물이다.

결국 탄소는 우리가 거부해야 할 악(惡)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선(善)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탄소의 과학’인 화학을 포함한 현대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 확인과 문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형편은 변할 수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현대 과학이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는 인문·사회·문화·예술과의 적극적인 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은 ‘탄소문명’이라고 부르고,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탄소문화’의 창달을 우리에게 주어진 막중한 시대적 당위라고 할 것이다. 특히 현대 과학과 기술의 가치와 성과를 분명하게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친(親)탄소적이고, 친(親)과학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탄소가 인간의 존재와 인류 문명의 가장 현실적인 기반이라는 사실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탄소#현대 인류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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