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현상’ 속에는 정치개혁, 즉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담겨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정치권이 무시해 오다가 안철수 현상을 키웠다고도 볼 수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측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공통의 정치쇄신 실천 방안을 협의하자고 제의하자 양측 모두 즉각 호응했다. 문 후보 측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원내대표단이 바로 만나서 동시에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여야가 특정 이슈에 대해 이처럼 신속하고 확실하게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여야 합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정치개혁안을 도출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박, 문, 안 세 후보가 내놓은 정치쇄신안은 양과 질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국회의원 공천권은 정치개혁 중에서도 핵심에 속한다.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으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부여하자’(박 후보), ‘여야 동시 국민참여경선과 더불어 중앙당에서 시·도당으로 공천권을 이양하자’(문 후보), ‘중앙당 공천을 폐지하고 완전국민경선으로 하자’(안 후보)는 제안들 가운데 최대공약수만이라도 실현된다면 한국 정치는 환골탈태(換骨奪胎)에 가까운 변화를 맞을 수도 있다. 대선후보들이 나서지 않고 ‘철밥통’의 대명사로 통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맡겨놓았더라면 이런 제안들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공천권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이나 다름없다. 중앙당으로의 권한 집중, 당론 수용 강요, 여야의 극한 대결, 계파 갈등, 공천 비리 등 우리 정치에서 불거졌던 수많은 구태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천제도 하나만 제대로 고쳐도 우리나라 정치를 상당 부분 바로 세울 수 있다. 다만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공천제도 개혁이라야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세 후보의 정치쇄신안 가운데 공통되는 내용으로는 대통령의 권한 분산, 선거 및 정당제도 개혁, 국회의원 특권 포기, 기초의원 정당 공천 폐지 등이 있다. 정치개혁은 대통령선거 일정과도 관련이 없다. 여야가 약속하고 법을 고친다면 당장이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굳이 대선이 끝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곧바로 세 후보 측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결실을 내기 바란다. 여야가 싸우지 않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