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얼마 전 대통령선거를 치를 때보다 더 뜨거워진 듯하다. 두 장군과 두 여인 때문이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4성(星) 장군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을 지냈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일하던 그는 자신의 전기(傳記)를 쓴 스무 살 연하의 여성 작가와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사임했다. CIA의 ‘앙숙’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과정에서 부각된 또 다른 여인은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과 2만 통이 넘는 e메일을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은 ‘영혼을 교감시키는 것은 키스보다 편지’라고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백두사업’ 추진과정에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이 로비스트 린다 김에게 보낸 연서(戀書)가 시중의 화제가 됐다. “샌타바버라 바닷가에서 아침을 함께한 추억을 음미하며…”라고 쓴 남자의 애틋한 고백은 읽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노무현 정부 때 신정아 스캔들에도 당시 실력자였던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이 등장했다. 신-변 커플은 100통이 넘는 사랑편지를 주고받았다. 린다 김은 “신정아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말을 남겼다.
▷퍼트레이어스 스캔들은 사생활의 보호범위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촉발했다. 미국 법원의 판례는 공인(公人)의 사생활 공개가 허위가 아닌 경우나, 설령 허위라도 진실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알권리를 우선시한다. 퍼트레이어스는 FBI가 수사 중에 관련자의 e메일을 열람하다 잡힌 뜻밖의 대어(大魚)다. “뼛속까지 무장(武將)인 체하더니…”라는 조소도 나오지만 미국 정보당국 수장(首長)의 내밀한 부분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을 목격한 보통 남자들은 은근히 ‘디지털 빅 브러더’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공적 사적 영역이 혼재된 인터넷 공간은 사이버 수사요원이 마음만 먹으면 남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파헤칠 수 있다. 적법 절차에 따라 영장을 발급받는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 뒤졌는지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하기야 썼다 지운 페이스북, 트위터 글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삭제한 e메일도 완벽하게 복원해 내는 세상 아닌가. 남몰래 사랑의 밀어(蜜語)를 나누려는 사람들에게는 사이버 세상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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